'아시아의 리더','권위주의적 독재자','철인왕(Philosopher King)','리콴유 왕조' 리콴유 싱가포르 고문장관(ministor mentor)에 대한 서방 언론의 평가는 이처럼 양 극단을 오간다.그러나 그가 ‘싱가포르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던 변방의 작은 나라를 일류 국가로 발전시켰다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는 1959년 총리에 취임한 후 31년간 총리직을 맡았다. 퇴임 후에도 선임장관,고문장관,싱가포르 투자청 회장직 등의 직함을 유지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독재자와는 달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그의 철저한 원칙 준수가 그 이유다. 그는 잘못을 저지른 고위층을 가차없이 처벌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했다. 고급 콘도미니엄 구입과정에서 분양금 중 일정액을 할인받았다는 의혹을 받자 주저없이 자신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게 단적인 예다. 조사 결과,부패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지만 그는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합법적인 할인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원칙준수는 노동조합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는 노조를 대상으로 싱가포르의 불안한 경제상황을 설명하며 국가발전을 위해 '노동 시간' 대신 '노동 성과'에 따라 임금이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했다. 하지만 불법 파업이 발생하면 노조 해산이란 강경책을 과감히 썼다. 참여를 유도하고 설득을 지속하되 원칙을 지키면서 이해 관계자들에게 넘을 수 없는 선을 명확히 제시하는 이런 방식은 블루오션 전략에서 강조하는 공정한 절차(fair process)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또 국가 발전이란 목적에 부합되면 아무리 민감한 문제라도 소신을 당당히 밝힌 뒤 밀고나가는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례로 그는 공식 석상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고 말해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빗나간 엘리트 의식의 발로'라며 국민들의 항의가 잇따랐지만 그는 각종 시험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은 학생의 부모들 학력을 조사한 결과를 제시하며 소신을 밀고 나갔다. 결국 정부는 대졸 남녀 간 교제를 지원하는 사교개발기구(SDU)를 설립했고,자녀를 많이 낳는 대졸 여성이 혜택을 받는 제도도 마련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