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21일 별세함에 따라 `영'(永)자 항렬의 현대가 창업 1세대 가운데 절반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해 있는 1세들도 막내 정상영 KCC명예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년전에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여서 현대가의 `1세 경영'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몇년간 경영권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옛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별로 이미 `몽', `선'자 2.3세의 후계구도 구축도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영'자 항렬 1세대, 절반 타계 = 생전에 `왕회장'으로 불렸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6남2녀의 장남으로 여동생 한 명은 어린시절 세상을 떠났다. 형제 중에서는 기자 출신으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에 가장 아꼈던 것으로 알려졌던 5남 신영(1931-62)씨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지난 62년 독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가장 먼저 운명을 달리했다. 이후 정주영 명예회장은 신영씨의 유복자인 조카 몽혁씨에게 현대정유와 현대석유화학을 맡겼으며 몽혁씨는 현재 에이치에비뉴 앤 컴퍼니 회장을 맡고 있다. 80세를 넘긴 후에도 타고난 건강을 자랑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왕회장'은 지난 2001년 3월21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타계, 하남 창우리 선영에 `영면'했다. 46년 현대자동차, 50년 현대건설을 차례로 설립하면서 기업인의 길에 뛰어든 그는 `현대'를 재계 서열 1위로 끌어올리면서 특유의 도전정신과 뚝심, 추진력으로 해방 이후 한국 경제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으며 기업인인 동시에 북한을 `햇볕'으로 녹인 민간외교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정치인,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체육인, 초등학교 졸업학력에도 10여개의 국내외 명예박사학위 가진 석학이었다. 그러나 다른 그룹들이 오너1세대 퇴진과 함께 전문경영진 체제로 돌아설 무렵에도 정 명예회장은 수렴청정을 통해 그룹을 좌지우지했고 결국 2000년 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간의 `왕자의 난'이 터지면서 그 해 5월 3부자 퇴진을 발표하는 등 불운을 겪었고 `재벌경영'의 비난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번에 타계한 4남 정세영 명예회장은 57년 현대건설로 입사한 뒤 67년 초대 현대차 사장에 취임한 후 32이년간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어오며 자동차 수출 신화를 일궈낸 한국 자동차 역사의 `신화'로 불렸다. 포니 수출 신화의 장본인으로 `포니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자동차 부문 승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져온 그이지만 현대차서비스를 통해 꾸준히 내수 판매 영역을 잠식, 갈등을 빚어온 장조카 정몽구 회장에게 자동차 부문 경영권을 넘기는 비운을 겪었으며 99년부터는 아들 정몽규 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바로 밑 동생인 2남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53년 현대건설에 입사, 형과 함께 현대를 일궜으나 77년 일찌감치 한라의 전신인 현대양행으로 독립했으며 이 과정에서 형 정주영 명예회장과 숱한 갈등을 빚었다. 97년말 외환위기와 함께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자 잠시 현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일순간 지원이 중단돼 재계에서는 형제간의 냉정한 등돌림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도 했다. 여동생 정희영 여사는 김영주 한국 프랜지 명예회장이 남편이며 슬하에 장남 김윤수 한국프랜지 회장, 김근수 울산화학 회장 등 2남을 두고 있다. 김영주 명예회장은 현대가 내에서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간 경영권 다툼에서 현대가 안팎에서 한 때 중재역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건강상 등의 이유로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었다. 6남으로 막내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2003년 고 정몽헌 현대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불거진 조카며느리 현정은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는 한 때 `상중에 조카 그룹을 빼앗으려 한다'는 세간의 비난여론에도 직면해있었으나 이후 정씨 일가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한편 정인영 명예회장이 부인 김월계 여사가 타계한 지난해 11월 빈소에 휠체어를 탄 채 쇠약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등 정인영 명예회장과 정순영 명예회장은 고령으로 이미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 별 활동이 없는 상태다. ◆현대가 2.3세 경영 사실상 일단락 = 정몽구 회장은 올 2월 외아들 정의선 부(35)사장과 90년 작고한 동생 몽우씨(4남)의 아들인 조카 정일선(35) BNG 스틸(옛 삼미특수강) 부사장, 셋째 사위인 신성재(37) 현대하이스코 부사장을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 오너 3세 경영 구도를 본격화했다. 장자 몽필씨가 지난 82년 사고로 사망하면서 정몽구 회장이 사실상 현대가의 정통성을 잇는 맏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의선 사장은 지난 2월초 기아차 지분 1%를 매입하기도 했으며 현재 지분 상속을 위한 물밑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최근에는 맏딸 성이씨가 현대.기아차의 자체 광고회사로 최근 출범한 이노션의 최대주주이자 이사로 등재됨에 따라 3녀1남 모두가 직접 또는 배우자를 통해 경영에 발을 담그게 됐다. 둘째 사위는 정태영 형대카드.캐피탈 사장이다.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도 지난해말 장남 정지선 부회장과 정교선 이사에게 보유 지분 상당부분을 증여하고 부장이던 교선씨를 이사로 승격시키는 등 후계구도 구축을 사실상 일단락지었다. 현재 정지선 부회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의 `압승'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경우 현회장 체제가 안정궤도에 진입한 가운데 맏딸 지이(28)씨가 현대상선 재정부로 입사, 올 초 대리로 진급하는 등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밟아나가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이자 택배, 아산, 증권 을 거느리고 있는 중간 지주회사인 현대상선의 외국인 지분율이 지난해 하반기 급등하면서 적대적 M&A 설이 흘러나오자 현회장측은 즉각 방어에 나섰으며 상선 지분 8.69%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건설 매각설이 대두되면서 건설 주인이 누가 될지에도 그룹측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CC측이 엘리베이터 지분을 처분하지 않는 것도 그룹으로서는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한편 정상영 KCC 명예회장도 지난해 몽진.몽익.몽열씨 등 세 아들에게 각각 377억원과 370억원, 234억원 등 모두 981억원에 해당하는 KCC 주식 77만3천300주를 분산 증여했고 올 2월 장남 정몽진 회장, 김춘기 사장과 함께 2남인 정몽익(43) 부사장을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 2세 경영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별세한 정세영 명예회장도 별세 3일전인 지난 18일 보유지분 전량을 외아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자녀 등에게 장내 처분, 사실상 기업 상속 절차를 마쳤으며 기업 경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들 정회장이 주도해왔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 지분 10.8%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나 아직 자녀들이 어려 후계구도 논의는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hanksong@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