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서는 '우리도 이제 더 이상 경영권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외국 회사들의 주식 교환을 통한 일본 기업 인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수년간 외국인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매입이 늘면서 상장회사의 외국인 지분율이 지난 90년대 후반 10%선에서 현재 20% 이상으로 높아졌다. 특히 캐논(50.9%) 소니(40.2%) 후지사진필름(44.9%) 등 우량 제조업체들도 외국인 지분율이 50% 안팎에 달해 경영권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측도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인 회사법 개정안에 경영권 탈취 목적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할 수 있는 조항을 넣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경영권 양도에 관한 의결 요건을 강화하거나 매수자 의결권 제한,우호적 주주에 대한 거부권 부여,특수 주식 발행을 폭넓게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일본 기업 자체적으로도 경영권 방어책 마련에 한창이다. 현재 상장회사들이 현행법 아래 준비 중인 방어 대책으로는 '포이즌필(독약조항)'을 정관에 넣는 방법이 가장 많다. 마쓰시타 히타치를 비롯 많은 기업들이 오는 6월 정기 주총에서 정관 변경을 추진 중이다. 파카 코퍼레이션은 적대적 세력이 TOB(주식공개매수) 등으로 주식의 일정 비율 이상을 매집했을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시장가격 밑으로 신주 인수권을 주기로 했다. 이 회사 이시타 사장은 "정기 주총에서 정관을 변경,방어책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제어기기 제조업체인 니레코는 지난달 기존 주주에게 유리한 가격에 신주 인수권을 주기로 결정했다. 금융시스템 개발회사인 심플렉스 테크놀로지는 적대적 인수자가 한꺼번에 임원을 대량 파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사 절반의 임기를 다르게 하는 '이사 임기 시차제'를 도입하기 위해 사내 규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미쓰이부동산은 이사수를 '○명 이상'의 하한제에서 '○명 이하'의 상한제로 바꾸기로 했다. 적대적 매수자의 이사 선임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호적인 기업끼리 상대 회사 주식을 보유하거나 기업 가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적대적 매수에 대처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신일본제철 스미토모금속 고베제강 등 3대 철강업체는 상대 회사 주식을 확보,적대적 세력에 대해 공동 전선을 펴기로 합의했다. 미쓰비시가스화학은 같은 그룹 계열사들에 자사 주식 보유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또 아사히덴카공업처럼 거래처에 상호 주식 보유 확대를 제안하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오에논홀딩스는 기존 대주주들에게 주식의 장기 보유를 요청했다. 주가를 올려 매수 비용을 높임으로써 적대적 M&A를 어렵게 하는 정통적 방식을 쓰는 기업도 많다. 게임기 메이커 닌텐도는 올해 주당 2백70엔을 배당,사상 최고액을 주주들에게 배당키로 했다. 이밖에 후지TV 도요증권 미토증권 데이코쿠조키제약 TTK 등도 배당 확대를 결정했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