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첨단기술 유출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7월 개정한 부정경쟁방지법 벌금 조항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스파이에 대한 벌금형 규정이 종전 1억원 이하에서 재산상 이득의 2∼10배로 대폭 상향 조정됐지만 법원이 '벌금액이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서울중앙지검과 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개정 법이 시행된 이후 기소된 5건의 기술유출 사건 중 새로운 벌금조항을 적용한 사례가 단 한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피해액이 50억원에 달했던 반도체 웨이퍼 검사장비나 항생제 중간체 제조기술 유출 사건 등 5건에 대해 모두 집행유예나 무죄가 선고됐다. 이는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정되기 전인 지난 2001년과 2003년에 기소된 웹데이터 가공프로그램 유출 등 3개 산업스파이 사건에 대해 수백만원 또는 수천만원 상당의 벌금형이 선고됐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이와 관련,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자체 개발한 기술을 도용당한 기업의 피해액이 최대 수조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며 "부정경쟁방지법이 산업스파이들에게 재산상 이득의 최소 2배 이상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재산상 이득이 피해액을 기준으로 산정되다보니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형을 선고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부 재판부는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 수준의 벌금형을 선고해본들 납부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벌금 하한선이 2배 이상으로 규정돼 형량계산에 부담이 된다며 벌금형 대신 업무상 배임죄 등 '우회 처벌'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벌금 하한 규정을 없애거나 개정 전보다는 벌금액을 높이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법 때문에 해당 기업에 엄청난 손실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산업스파이 행위에 대한 제재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