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 회장이 컴팩 인수 실책으로 경질되자 미국 언론과 경영학자들이 기술 업체간 합병 중 유독 실패 사례가 많은 이유를 집중 파헤치고 있다. 기업간 합병의 성공 확률은 50% 미만이라는 게 정설이며,그 중에서도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컴퓨터 제조업체 같은 테크놀로지 기업간 결합은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일 뉴욕타임스는 그 이유에 대해 "테크놀로지 기업의 핵심 역량은 인재인데 합병 후에는 보통 피인수 기업에서 대규모 이직이 일어나기 때문"(하버드 비즈니스스쿨 크리스나 팔레푸 교수)이라고 분석했다. 금융 회사의 경우 핵심 경쟁력이 자산에서 나오기 때문에 합병 수순 중 하나인 대규모 감원 후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지만 테크놀로지 업체는 회사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금융은 인수합병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분야로 꼽힌다. 팔레푸 교수는 또 테크놀로지 사업의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혁신에서 나온다는 것도 이 기업군에서 성공한 합병 사례가 드문 이유라고 지적했다. 합병을 통해 덩치를 불리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PC부문에서 시장 1,2위를 다투던 컴팩,디지털이퀴프먼트,HP가 한 회사가 된 후 비즈니스 모델에서 혁신을 이룬 델에 1등 자리를 내준 게 대표적인 예다. 또 사업 환경 변화가 빠른 속성상 기술 업종에는 대기업의 틀에 짜여진 문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UBS워버그 전략분석가 핍 코번)도 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기술 업체간 인수 합병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직접 경쟁사보다는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 파트너를 찾는 것이 낫다고 보도했다. 테크놀로지 업체 합병 중 보기 드문 성공 사례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4년여 전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번지스튜디오를 사들인 것으로,MS는 이 인수합병을 통해 게임기(X박스) 사업 강자로 도약했다. 미국 와튼스쿨의 로버트 홀트하우젠 교수는 기술 업체를 인수할 때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사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속사가 인수된 후 동료들이 (감원 등) 나쁜 처우를 받는 것을 보고 이직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