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국내 식민지가 존재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양극화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동부 연안의 주요 도시에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공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배층은 일반적으로 해당 도시의 원거주민이고, 피지배층은 내륙에서 돈 벌러 온 외지인들이다. 다소 과장 섞인 이 말은 중국의 빈부격차, 도.농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표현하고 있다. 상하이의 한 부동산개발업체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왕(王)씨.푸둥(浦東)의 한 고급 별장 단지에 있는 그의 집에는 구(顧)씨 성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왕 부사장의 부인이고 또 한명은 안후이(安徽)성 출신의 가정부다. 두 사람은 이번 춘제(春節·설)때 가는 길이 다르다. 왕 부사장 부인은 하와이로 해외여행을 떠나고,가정부는 입석 기차를 타고 10시간을 달려 허페이(合肥) 근처 집으로 간다. 평소 생활도 다르다. 가정부 구씨가 집에서 빨래와 청소를 할 때 왕 부사장 부인은 아파트 분양사무소를 옮겨 다니며 투자할 아파트를 물색한다. 가정부 구씨가 반찬거리를 사기위해서 재래시장을 갈 때 왕 부사장 부인은 호화쇼핑가인 난징시루(南京西路)의 명품상점을 찾는다. 가정부 구씨가 한달 9백위안(1위안=1백30원)을 벌 때 왕씨 부인은 7만위안짜리 구치 핸드백을 산다. 요즘 아파트 투자로 재미를 보면서 씀씀이가 커졌다. 상하이의 경우 식당 종업원,건설공사 인부,청소부,가정부,가라오케 접대원 등 3D업종 일은 외지인 몫이다. 그들은 1천위안 안팎의 월급에 묵묵히 일을 하면서도 배타성이 강한 상하이인들의 질시를 받기도 한다. 상하이뿐만 아니다. 다롄(大連) 베이징 칭다오 광저우 등에 이르는 중국 동부연안 개발도시의 3D업종은 여지없이 외지인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 연안도시의 발전은 농촌출신 외지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농 빈부격차가 부른 현상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먼저 부자가 되어도 좋다'라는 선부론(先富論)을 제창했다. 아랫목이 데워지면 윗목도 따뜻해 질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는 반대였다. 농촌개혁으로 농민소득이 상대적으로 향상됐던 지난 85년을 고비로 도·농 소득격차는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85년 1.9대1이었던 소득격차는 작년 3.2대1로 부풀었다. 중국의 도시와 농촌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중국의 지니계수(빈부격차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수,1에 가까울수록 부의 편중을 나타냄)는 현재 0.454로 위험수준으로 여겨지는 0.4를 넘어선지 오래다. 돈이 도시로 몰리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도시에서 민공들이 벌어 농촌으로 보낸 돈은 또다시 도시로 나오고 있다. 중국의 가난한 성(省)중 하나인 산시(山西)는 탄광으로 유명하다. 지난 2년여 동안 이 곳이 '돈벼락'을 맞았다. 전력난이 심해지면서 석탄 수요가 급증,가격이 크게 올랐다. 당연히 이 지역 경제가 좋아지고,주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져야 했다.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 경영은 분명히 좋아졌는데도 직원 임금은 월 6백위안 선에서 오르지 않았다는 게 중국 언론의 보도다. 석탄가격 상승으로 돈을 거머쥔 산시 탄광 부호들이 달려간 곳은 베이징 부동산시장.그들은 돈을 싸들고 와 베이징 시내의 고급아파트를 사들였다. 작년에만 약 1백억위안 이상이 베이징으로 유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장(新疆)에서 우유를 팔아 성공한 기업이 칭다오에서 부동산개발사업을 하고,쓰촨(四川)에서 사료로 돈을 번 기업이 상하이의 빌딩을 매입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농촌에 돈이 남아있을 리 없다. 빈부격차는 중국 내수시장 확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다. 도시지역 가구들은 이미 어지간한 생필품을 모두 구입한 상태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내륙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러나 내륙의 일부 거점 도시를 벗어나면 구매력은 턱없이 떨어진다. 게다가 빈부격차는 사회불안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날로 확산되고 있는 빈부격차가 갈 길 바쁜 중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