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으로의 진입이냐,하반기 회복이냐'


침체의 늪을 어렵게 헤쳐 나가고 있는 한국 경제호는 2005년 중대한 기로를 맞을 전망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3%대의 저성장이 불가피하겠지만 하반기부터는 내수를 중심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부 비관적인 민간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달러약세와 세계 IT(정보기술)경기둔화가 지속될 전망인데다 정책 불확실성 등으로 기업투자와 민간소비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적다며 장기불황을 우려하고 있다.


내년 우리 경제가 회복의 전기를 마련하느냐,아니면 끝 모를 불황의 터널을 계속 지날 것이냐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3만달러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아니면 선진 경제의 문턱에서 끝내 좌절할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만치 않은 변수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를 돌이켜보면 대통령 탄핵,원자재 대란,고유가,달러 약세,성매매방지법 등 예기치 못했던 악재 발생이 끊이지 않아 경제가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이 부총리는 또 "이제 나올 만한 악재는 다 나왔기 때문에 내년에는 더 나빠질 것도 없다"며 "더구나 내년엔 올해의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내년에도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국내외 여건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특히 대외적으로 올해 4%대 중반으로 예상되는 세계경제 성장률이 내년엔 3%대 중반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IT경기의 둔화가 두드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IT경기의 향배는 한국 경제의 기둥산업인 반도체 수출을 좌우하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내년에도 달러화 약세가 지속될 공산이 큰 데다 중국의 위안화 절상 가능성도 있어 수출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안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국민들의 소비심리가 어느 정도 풀려 지갑을 열도록 할 것이냐가 경기 회복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또 하반기 경기 진작을 겨냥해 정부가 계획 중인 '종합투자계획'의 성공 여부도 관심거리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부동산 보유세제 강화와 거래세 개편 등도 부동산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29 대책 이후 강력해진 부동산시장 규제가 주택거래를 급감시켜 건설경기는 물론 내수 전반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상반기까지는 3%대 성장 불가피


주요 경제전망 기관들이 점치고 있는 내년 국내 경제 성장률은 4% 안팎이다.


올해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4.7%)보다 더 떨어진다는 얘기다.


공통점은 성장률만 보면 상반기가 하반기보다 더 나쁠 것이라는 점이다.


올 상반기 성장률이 약 5.4%로 높았기 때문에 전년 동기 대비로 따지는 성장률은 내년 상반기에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상당수 전망기관들은 내년 상반기 성장률이 3%대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올 하반기 성장률은 4%선으로 낮기 때문에 내년 하반기에는 수치가 다소 올라갈 것이라는 게 정부측의 기대다.


부문별로는 올해 통관 기준으로 30% 이상의 증가세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이 한자릿수 증가로 크게 둔화될 가능성이 짙다.


그만큼 성장에 대한 기여도도 낮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올라가는데 과연 그 신장폭이 어느 정도냐가 경기 회복을 좌우할 전망이다.


결국 내년 하반기 경기가 회복될지 여부는 얼어붙은 민간소비가 얼마나 되살아 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민간소비는 건설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내년 경기 회복의 관건은 건설시장 회복 여부에 달렸다는 시각도 설득력을 갖는다.


정부가 하반기 내수 진작을 위해 10조원 규모의 민간자본을 유치하는 종합투자계획을 마련 중인 것도 그같은 맥락이다.


◆'고용없는 성장'은 난제


올해 실업률은 3.5% 정도로 예상된다.


그러나 내년엔 실업률이 더 올라갈 공산이 크다.


경기 회복이 더뎌지면서 기업들이 마침내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에 하나둘씩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내년 실업률을 상반기 3.7%,하반기 3.4% 등 연간 3.6%로 내다봤다.


이 실업률 수치만으로도 지난 2001년 3.8% 이후 4년 만의 최고치다.


실업률은 2002년 3.1%,2003년 3.4%였다.


더 큰 문제는 설령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실업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소위 '고용 없는 성장'구조로 전환되면서 일정 성장을 하면서도 신규 인력의 흡수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성장동력인 정보통신 부문은 고용유발 효과가 크지 않은 데다 경기가 나쁘면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해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질적인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도 "실업률이 수치상으로는 선진국보다 낮게 나오지만 실업통계에 잡히지 않는 요인들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실업률이 높다"며 "내년 하반기부터 잠재성장률(5%) 이상의 성장을 달성하더라도 고용 없는 성장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신규 고용이 활발히 일어나지 않고 실업이 늘어나면 성장률이 회복되더라도 일반 국민들의 소득 저하로 체감경기는 여전히 쌀쌀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