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 있는 LG전자 가전사업본부의 김춘기 조직문화그룹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중매'다. 결혼정보회사인 '듀오'를 통해 이달말께 같은 직장 총각들과 창원지역 처녀들간 '30쌍 중매'를 주선하기로 돼 있다. 중매에 나갈 남자들은 서울 등 수도권 출신으로 현재 창원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R&D(연구·개발) 인력들.이들의 '맞선' 상대는 창원과 마산지역 규수들이다. 대개 교사 또는 디자이너 등 전문직 여성으로 짜여졌다. 김 그룹장은 "신입사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경상도권 출신 R&D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라며 "아무리 외지출신이라고 해도 창원 여성들과 만나다 보면 여기에 정을 붙이고 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지방에 R&D센터를 둔 전자업체들이 수도권 출신 인재들의 이탈을 막고,우수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LG전자 가전사업본부는 작년부터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1년에 네차례 '커플링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결혼에 골인할 경우 맞선 비용은 물론 세탁기 에어컨 등도 회사가 혼수 선물로 준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중매 신청자 공고를 내면 정원보다 3∼4배 많은 1백여명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다. 맞선 때마다 7∼8쌍은 애인관계로 발전하고 있으며,결혼으로 이어진 커플도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창원과 멀리 떨어진 대구 부산 등의 경상도 출신 직원들이 '왜 우리에겐 기회를 안주냐'며 불평할 정도로 중매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최근들어 이직률이 크게 떨어졌는데 청년실업 문제와 함께 커플링 이벤트가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기는 우수 인력의 이탈을 막고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아예 지방 연구센터를 수도권으로 옮기기로 했다. 삼성전기는 대전에 위치한 기판 부문의 선행기술 연구파트를 수원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대전에서 인재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이전을 추진하게 됐다"며 "수원은 서울에 몰려 있는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지리적인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LG필립스LCD가 경기도 파주를 대규모 LCD단지 및 차세대 디스플레이 R&D센터 부지로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우수한 R&D 인력 및 엔지니어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업체에 불과한 신도리코가 복사기 부문에서 대기업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서울에 R&D센터를 둔 덕에 인재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방에 R&D센터를 둔 기업들이 인재 확보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인재 이탈을 막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