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는 유대인들을 둘러보며 "자, 여기 너희의 왕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라고 외쳤다. 빌라도가 "너희의 왕을 나더러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냐?"하고 말하자 대사제들은 "우리의 왕은 케사르밖에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요한복음 19장 14∼15절) 빌라도조차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못 박으라고 거듭 요구했다. 그들은 강도인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버렸다. 군중들의 선택과 달리, 죄 많은 인간들을 대신해 죽은 예수는 2천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기독교를 믿든 안 믿든, 이 대목에서는 인간으로서 부끄러워진다. 모든 이들이 맞다고 여기는 길이 꼭 옳은지, 목청 돋우기에 편견은 없는지, 지금 또 다른 예수를 못박고 있는 것은 아닌지…. 11일은 예수가 사흘 만에 되살아난 부활절이다. 스스로 욕되게 한 정치도, 긴 터널 속에 갇힌 경제도 부활하기를 기원해본다. 그런 점에서 15일 총선을 맞는 '대한민국호(號)'는 중차대한 기로에 섰다. 봄 바람이 센 탓인지 이번 총선 정치판에선 유독 바람이 거세다. 예수를 못질한 군중들처럼 이런저런 바람(風)에 휩쓸리거나, 바람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모두 보기 안좋다. 총선 결과 여당이 뜰지, 거대 야당이 되살아날지 초미의 관심거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총선 이후가 아닐까 싶다. 이념으로, 세대로, 지역으로 갈라지고 쪼개진 사회를 어떻게 추스르고 치유해 새로이 출발할지. 경제 분야에선 한투ㆍ대투증권 매각 작업에 금융계의 이목이 쏠려있다. 주초(12일) 인수의향서 접수를 마감한 뒤 20일까지 예비 후보를 선정할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개혁 로드맵에 따라 출자총액 관련 규정을 손질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16일 입법예고한다. 경제지표로는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과 한국은행의 3월 어음부도율, 산업자원부의 2003년 노동생산성(이상 16일) 발표가 예정돼 있다. 이 가운데 고용시장의 일자리 회복여부가 초점이다. 이라크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총선 당일 방한 일정이 눈길을 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총선 후로 넘겼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헌재 주변에 센 바람이 불 듯하다. 바야흐로 패러디 시대라는데, 대학가 화장실 낙서에 이런게 있다. "침묵은 금이다. 그러나 금(gold)이 아니라 금(gap)이다." 정녕 정치를 욕하고 싶거든 나가서 투표부터 하자.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