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연구기관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관련 법률과 제도를 과감히 고치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경제부총리로 취임한 뒤 취임사와 두 차례 정례브리핑, 기업인 및 연구기관장들과의 면담에서 한번의 예외도 없이 '기업가 정신 고양'을 언급한 셈이다. 노무현 정부 2기 경제팀을 맡은 이 부총리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정책의 최우선 화두로 굳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수단에 대해서는 재경부 핵심 관계자조차 "부총리가 특정한 법률이나 규제를 지칭한 적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기업인과 경제전문가, 언론 등으로부터 광범위한 의견을 들은 뒤 시장에 먹혀들 수 있는 고강도 처방을 한번에 내놓으려 하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 "한방에 해결하겠다" 이 부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새로운 산업의 성장 없이는 일자리 흡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업들이 활발하게 신규 사업에 진출하고 창업도 활발히 일어나야 하는데, 한국은 "제도적 장애가 너무 많다"는게 이 부총리의 상황 인식이다. 이 부총리는 그러나 지난 11일 취임 후 지금까지 구체적인 정책수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가정신 고양이나 토지규제 완화 등 큰 정책방향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출자총액제한 △적대적M&A 보호장치 △신용불량자 대책 등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설익은 대책을 언급하면 시장에 혼란만 초래하고 실기(失機)하기 때문에 정책수단의 강도만 높아지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오늘은 얘기를 듣겠다"며 '기업가 정신 고양을 위한 법ㆍ제도 개편' 외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이 부총리가 가능한 한 모든 사안들을 종합 검토한 뒤 한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 의결권 제한 등 규제완화 관심 이 부총리가 '기업가 정신 고양'을 잇따라 언급하면서 경제계의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꼽혀온 규제들중 상당수가 이번에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경제계가 줄곧 주장해 왔던 '기업가 정신 훼손' 규제들은 무수히 많다. 각종 수도권 진입규제와 공장설립 허가면적 규제는 기업의 진입장벽을 높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기업그룹 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규정은 기업주의 의결권 행사지분을 떨어뜨림으로써 신규사업 진출 의욕을 꺾고, 출자총액제한 규제는 기업의 사업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히고 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반(反)기업정서, 잦은 부당내부거래 조사, 과거 분식회계 문제, 사회보장성 부담금 등도 기업의욕을 꺾는 요인들이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한 연구기관장은 "법인세를 보다 과감하게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한상의 경총 전경련 등 경제계는 기업경영과 관련된 이같은 애로사항들을 광범위하게 수렴한 뒤 재경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 부처간 정책조율에 관심 기업 활력을 떨어뜨리는 '제도적 장애'를 타파하겠다는 이 부총리의 정책방향에 반발하는 기류가 총선뒤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4월 총선거를 의식한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대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 제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배를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정책코드'를 감안하면 기업관련 규제들이 속시원히 풀리는 것이 쉽겠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히 출자총액제한 등 기업관련 핵심 규제를 틀어쥐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부총리와 '코드'를 제대로 맞출 수 있을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