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범죄가 많은 도시였다. 살인 강도 마약 등 강력범죄가 난무했다. 뉴욕 시민들은 지하철 타기조차 망설일 정도로 불안에 떨었다. 중산층들은 범죄를 피해 뉴욕 교외로 빠져나가 살았다. 그러나 뉴욕경찰국(NYPD)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들을 처리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예산이 해마다 삭감돼 경찰관들의 봉급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낮았다. 부패ㆍ독직 사건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당연히 경찰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예산만 연 20억달러, 3만5천여명이나 되는 뉴욕경찰에 대한 뉴욕시민들의 지지도는 37%밖에 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언론들은 앞다퉈 뉴욕이 '큰 사과(Big appleㆍ뉴욕의 애칭)'가 아니라 '썩은 사과(rotten apple)'로 변했다고 꼬집어댔다. 그랬던 뉴욕이 지금은 미국에서도 안전한 도시로 손꼽힌다. '9ㆍ11 테러'로 인해 시민들의 공포는 오히려 커졌지만 순수 범죄율만 따지면 미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낮다. 뉴욕의 기적같은 변화를 이끈 주인공이 바로 윌리엄 브래튼 전 뉴욕경찰국장(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장)이다. 브래튼 국장은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전조직에 걸쳐 가치혁신을 실현하기 위한 리더십과 변화관리틀로 제시한 '급소경영(tipping point leadership)'의 대표적인 모델로 꼽는 인물이다. 브래튼 국장의 개혁은 '뉴욕 시민들을 가장 괴롭히는 범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서비스 공급자인 경찰의 눈이 아니라 서비스 수요자인 뉴욕 시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살펴본 것이다. 그는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살인같은 중범죄보다는 지하철 범죄, 소매치기 등 경범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음 단계는 이 사실을 직원들에게 인지시키고 개혁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절차. 오랜 관습에 젖은 구성원들에게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브래튼 국장은 개혁에 대한 '인식의 장애'를 걷어내는 방법으로 현장주의를 택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고위 간부들에게 지하철을 이용하도록 지시했다. 중범죄의 3%만이 지하철에서 일어난다는 통계만 믿고 지하철 안전 문제에는 전혀 무감각했던 간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간부들은 대합실에 드러누운 알코올 중독자들과 소매치기들을 보면서 지하철이 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또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경찰관들과 관할 지역주민들간에 정기적인 미팅을 열었다. 그 결과 경찰들은 뉴욕 시민들이 중범죄보다는 구걸이나 소매치기 같은 일상 속 경범죄에 대한 불만이 훨씬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시킨 뒤 그는 업무 효율이 높아질 수 있도록 인력과 자원을 재배치시켜 '한정된 자원'의 문제를 극복했다. 주중에 몰려 있던 마약 단속반의 근무시간을 마약거래가 주로 이뤄지는 주말로 바꾼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지하철 전 노선에 배치돼 있던 경찰들을 범죄 빈발 노선에 집중 배치시킴으로써 지하철 순찰에 투입되는 인력은 줄이면서도 효과적인 순찰이 가능케 했다. 조직원들의 '동기 유발'을 위해 브래튼 국장은 76개 파출소장을 포함해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매주 전략 점검 미팅을 가졌다. 파출소장은 보통 2백여명의 부하직원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하면 전 경찰조직에 빠른 속도로 변화를 퍼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개혁에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찰국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브래튼 국장은 존경받는 인사인 존 티모니를 경찰국내 2인자로 임명했다. 경범죄 처리로 인해 업무가 많아졌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뉴욕의 법조계를 달래는 데는 당시 줄리아니 뉴욕 시장의 손을 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94년부터 3년간 뉴욕경찰국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뉴욕의 중(重)범죄율은 39%나 떨어졌다. 살인과 절도범죄는 각각 50%, 35% 줄었다. 경찰에 대한 신뢰도도 73%까지 치솟았다. 브래튼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 96년엔 '타임'지의 표지인물로 실렸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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