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는 중국 명ㆍ청 교체기에 광해군의 절묘한 줄타기 외교로 전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리학적 명분론을 기반으로 인조가 집권한 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백성이 청군에 유린 당하는 동안 남한산성에서 버티던 조선 조정에서는 주화론(최명길)과 척화론(김상헌)이 맞섰다. 인조반정 공신이었던 최명길은 "싸우자니 힘이 부치고 감히 화의하자고 못하다가 하루 아침에 성이 무너지고 위아래가 어육(魚肉)이 되면 종묘사직을 어디에 보존하겠느냐"며 홀로 청과의 강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김상헌은 최명길이 쓴 항서를 찢고 통곡하며 결사항전을 외쳤다. 최명길은 찢긴 항서를 주으며 "찢는 사람이 있으면 줍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탄식했다. 두 사람은 6년 뒤 극적으로 청나라 감옥에서 만나 화해했다. 김상헌이 먼저 "두 세대의 좋은 우정을 찾고, 백년 묵은 의심이 풀리노라"고 읊자 최명길은 "그대 마음 돌 같아 끝내 돌리기 어렵건만 나의 도(道)는 고리 같아 돌아갈 줄만 아노라"며 김상헌을 칭송했다. 최명길이 지금껏 기억되고 있는 것은 대안없는 명분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개인의 치욕을 참았기 때문일 게다. 어느 시대건 현실론은 명분론보다 인기가 없게 마련이다. 자주외교 논란 속에 외교부 수장이 갈리고 남북, 북ㆍ미 관계보다 한ㆍ미관계가 더 미묘해진 상황에서 그의 생애가 새삼스럽다. 올해 설은 설답지 않다고들 한다. 설 연휴 중 수은주가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일기예보만큼이나 설 경기가 춥게 느껴진다. 재래시장에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을 정도다.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19일 가락시장을 찾는데 상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울러 '대화와 투쟁을 병행하겠다'는 민노총 새 지도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미국이 쇠고기 수입금지 해제를 요청하기 위해 다시 대표단을 파견하는 것도 지켜봐야겠다. 가장 관심이 가는 행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전경련 회장단의 청와대 오찬회동(19일).경제장관들이 대거 배석하는 자리에서 경제계는 일자리 창출과 끝모를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다. 서로 주고받을 한마디 한마디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최근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오찬에서 "재계가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포용'에 대해 이외수는 이렇게 시로 썼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하여/어찌 등 뒤에 있는 그대를 껴안을 수 없을까/내 한몸 돌아서면 충분한 것을"('날마다 하늘이 열리나니' 전문)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