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통상호(號)"가 맞닥뜨릴 개방의 파고는 어느 해 못지 않게 높아질 전망이다. 전 세계 통상 질서를 뿌리째 바꿔 놓을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오는 2월께 재개될 전망이며 한.일 및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정부간 협상도 본궤도에 오른다. 올해로 끝나는 10년간의 쌀관세화 유예 조치를 지속할 수 있을지 여부를 판가름 지을 미국 호주 등 주요 쌀 수출국과의 쌀개방 재협상은 물론 한.칠레 FTA 협정 이행을 둘러싼 농민단체 등 이해 집단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 전면 개방 불가피 WTO는 작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WTO 각료회의 실패 이후 비공식 대사급 협의 등을 통해 협상 진전을 모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협상시한(2005년 1월1일)을 1년 남겨둔 시점에서 주요 분야의 협상 세부원칙(Modality)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해진 시한 안에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오는 2월께 각 분야별 협상 의장들이 바뀌는 것을 계기로 일단 후속 협상이 재개될 전망이다. 올 하반기 홍콩에서 열릴 예정인 제6차 WTO 각료회의가 협상의 시한내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각료회의까지 협상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으면 협상 시한 연기가 불가피하다. 제5차 각료회의 결렬로 국내 농업은 전면 개방이라는 '직격탄'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불과 수개월의 시간만 벌었을 뿐 농업개방은 사실상 합의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농업이 아닌 '싱가포르 이슈'(무역원활화,정부조달 투명성,경쟁정책,투자정책 등 4개 부문)가 결렬 사유였다는 것이고 보면 농업 분야는 대폭적인 관세 인하를 골자로 한 대개방이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농업개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지난 9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부여받은 개도국 지위를 재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농업협상에서는 다양한 유예 조건을 인정받는 개도국 지위를 요구하면서 다른 회원국들의 공산품 시장에 대해서는 선진국 기준에 맞춘 개방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엇갈린 입장 차이를 다른 회원국에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어려워진 쌀 시장 보호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 따라 올해 쌀 재협상도 벌여야 한다. 한국은 지난 94년 UR 협상 당시 쌀에 대해 예외적으로 관세화(쌀시장 개방)를 유예받는 대신 그 이듬해부터 10년간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단계적으로 늘려 수입하다는 데 합의했다. 유예 기한이 끝나는 올해에는 주요 쌀 수출국인 중국 미국 호주 태국 등과 관세화 지속 여부를 다루는 재협상을 갖도록 돼 있다. 쌀 재협상의 문제는 당장 한국 정부가 쌀 관세화 유예냐,아니면 쌀 관세화를 통한 쌀시장 개방이냐의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정부는 DDA협상 지연으로 농산물 시장개방 방식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쌀 관세화의 유·불리를 비교할 기준도 없이 협상에 나서야 할 처지다. 쌀 관세화 유예시에는 MMA 물량 수입의 증량 등을 통해 쌀 수출국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개방폭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결국 재협상이 어떻게 결론나든 쌀농사 중심인 국내 농촌에는 엄청난 충격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작년 칸쿤 각료회의에서 논의된 농업분야 선언문 초안의 개방 조건을 적용할 경우 향후 DDA 협상에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쌀에 1백50%의 관세 상한이 붙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되면 국내 쌀 소득은 지난해 7조2천억원에서 2010년에는 2조7백억원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