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세계경영의 상징이었던 폴란드의 대우-FSO. 지난 95년 대우가 GM을 제치고 폴란드 국영자동차회사인 FSO를 인수해 설립한 이 공장에는 폴란드 내에서 단일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14억달러가 투자됐다. 연산 50만대 생산규모를 자랑하는 이 공장은 그러나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3일은 가동하지 않는다. 금요일 아침이 되면 30만평이 넘는 공장 전체가 적막에 잠긴다. 지난달 생산대수는 불과 3천대. 이달에도 4천대에 그치고 있다. 내달 생산계획 물량은 단 2천5백대 뿐이다. 라노스와 마티즈 단 2개의 차종만 만들고 있으며 그나마 현금으로 구매한 원자재가 있을 때만 간간히 돌아갈 뿐이다. 완성차 대부분은 인근 우크라이나 인근지역에서 3개의 반제품 형태로 쪼개 국경을 통과한 뒤 다시 조립하는 SKD(Semi Knock Down) 방식으로 수출된다. 자재를 살 돈이 없어 프리페이(pre-pay) 조건으로 공급하고 있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대우 루마니아의 크라이오바 공장에서 들여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가 없으면 대우-FSO는 진작 명맥이 끊겼을 상황이다. 이 공장의 최고 전성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우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99년. 본사가 사실상 부도를 뜻하는 디폴트(defaultㆍ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졌지만 이로 인한 시장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출혈생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생산실적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지만 이미 그 해 8월에만 재고가 5만대나 쌓여 있었다. 생산라인은 풀 가동상태를 유지했지만 팔리지 않는 차들로 공장은 가득찼다. 다행히 그 해 폴란드 내수시장에서 65만대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시장점유율이 28%까지 치솟았지만 이 역시 무리한 밀어내기 영업의 결과였다. "차가 팔리기만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죠. 3년 무제한 워런티(warrantyㆍ품질보증)에 구매금융까지 파격적인 조건을 제공했죠.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목적에서 판매를 위한 무모한 마케팅을 벌인게 사실입니다."(안경기 대우-FSO 관리담당) 하지만 정작 폴란드를 발판으로 서유럽 소형차 시장을 공략한다는 당초 목표는 끝내 달성하지 못했고 결국 2000년 부터 현금흐름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포드의 인수포기로 생존이 불투명해졌고 GM이 FSO를 인수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신용도는 추락했고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만 가능해졌다. 이 때부터 대우-FSO는 폴란드 정부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바르샤바 시내에 위치해 있는데다 지금은 3천1백명으로 줄었지만 한 때 1만명을 거느린 막강 노조의 고용유지 압력이 적지 않았다. 1953년부터 차를 만들어내던 폴란드 기계산업의 자존심이라는 정치적 상징성도 회사운영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지난 9월 파산 직전 폴란드와 한국정부간 대타협을 통해 수출입은행 등 국내채권금융기관이 가진 4억2천만달러를 출자전환키로 했다. 폴란드 정부도 법인세 유예분 등 채권 1억6천3백만달러를 출자전환하고 현지은행들도 채권의 절반을 탕감해 주기로 결정했다. 대신 한국정부는 더 이상 대우-FSO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주재원 1백38명과 엔지니어 2백명 등 3백명이 훨씬 넘는 한국 직원들로 북적대던 곳이지만 지금은 단 2명만 남아 있고 이들도 내년초 철수할 예정이다. 김우중 회장은 99년 11월 마지막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공장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시내호텔로 전 임직원을 불러놓고 이해하지 못할 격분을 토로한 것이 끝이었다. 이제 대우-FSO는 폴란드 정부의 단독 책임하에 놓여졌다. GM과의 협상을 통해 내년 10월까지로 정해진 생산계약을 연장하던지, 클린컴퍼니로 만들어 새로운 인수자를 찾던지 결론을 내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의 수는 이미 남아 있지 않다. GM은 내년부터 GM대우의 헝가리 판매법인을 통해 이 곳에서 대우차 모델을 판매할 계획이다. EU 가입과 함께 수입관세가 35%에서 10%로 대폭 낮아지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1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좌초한 대우-FSO가 한국기업에 던져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대우가 내건 세계경영의 아젠다(Agenda)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특히 품질과 브랜드에서 일류에 진입하지 못한 한국기업으로서는 동구권의 EU(유럽연합) 가입이 가져다 줄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해외공장 진출은 진정한 실력이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이고 시장과 규모와 마케팅 능력에 맞게 생산시설을 운영해야 합니다. 신시장 선점효과에만 급급해 냉정하게 자신의 역량을 평가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8년동안 대우 세계경영의 영광과 좌절을 겪은 대우-FSO의 장병호 대표가 내년에 동구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할 현대차에 던지는 충고다. 바르샤바(폴란드)=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