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전문가들은 내년중 한국 경제를 전망하면서 경제적인 요인보다는 정치불안과 노사문제 등 경제외적인 변수를 더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특히 춘투(春鬪),하투(夏鬪)와 추투(秋鬪)에 이어 동투(冬鬪)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사분규에 대해서는 기업인은 물론 정책 담당자인 공무원들조차 심각한 위기감을 나타냈다. 중·장기적으로는 중요 국정과제마다 분출되고 있는 세대간 또는 계층간 이념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급격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의 위협도 현 정부가 대처해야 할 중요 과제로 지목됐다. ◆정치불안에 휘청거리는 경제 '내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대내 불안요인'을 우선순위에 따라 두 가지 꼽으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8.9%가 '정치불안'을 제1순위에 올려 놓았다. 제2순위로 가장 많이 언급된 불안요인은 '노사관계 악화'로 전체의 22.0%가 선택했다. 4개 전문가그룹 중에서는 공무원(30.6%)이 기업인(18.0%)보다 노사문제를 더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주5일 근무제도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등을 둘러싼 노사간 이견이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1,2순위를 모두 합칠 경우엔 '정치불안'(28.9%) '노사관계 악화'(18.4%) '가계부실'(17.1%) '정부의 정책혼선'(12.6%) 등의 순이었다. 한편 내년 국내 주요부문에서 장애가 될 요인으로는 '소비'(51.0%)와 '설비투자'(32.79%)가 가장 많이 제시됐다. 반면 내년 경제성장을 이끌 부문으로는 수출이 78.25%로 가장 많은 기대를 모았다. 정규영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내년에도 수출 주도형 성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부문 침체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 5%대의 성장은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념갈등 해소가 관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된 것은 '이념갈등'(25.8%)이었다.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문제에서부터 파병 노사대립 반미운동 부안사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이념적인 골이 깊어졌다는 진단이다. 김기승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념갈등이 심화될 경우 국론이 분열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이 초래된다"며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갈등 조정기간을 줄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점점 목을 조여오고 있는 중국의 위협도 넘어야 할 산으로 지적됐다. 조사대상 가운데 20.0%가 '중국과의 경쟁'을 향후 한국 경제의 최대 도전요인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지난 18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중국에 비해 기술수준이 1.7년 정도 앞서 있으나 이 간격은 앞으로 5년 이내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세번째로는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전세계 투자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의 역동성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가 앞으로 4∼5년간 제조업 공동화의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5%대 성장엔 '글쎄' 이번 설문에 참여한 각계 전문가들은 국내 예측기관들에 비해 내년 경제성장률을 낮게 전망했다. '4%대 초반'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2.67%로 가장 높았고 4%대 미만으로 바라본 대답도 37.79%에 달했다. 반면 5%대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비중은 겨우 7%대에 머물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금융연구원 LG경제연구원 등 국내 대표적인 연구기관들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5.1∼5.8%로 예상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비관적인 전망이다. 한편 '내년중에 가계부실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97% 이상이 '오히려 심화되거나 완화되더라도 문제로 남을 것'이라고 대답,신용불량자로 인한 가계부실 문제가 내년에도 경제불안 요인으로 상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견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