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경제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외여건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한국경제에 영향을 주는 요인분석(factor analysis)을 통해서 볼 때 대외변수가 70% 정도가 좌우하고 있고 기업과 각종 금융상품의 수익성도 대외가격변수와의 상관계수가 0.80을 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 일본 경제전망 > 역시 미국경제가 중요하다. 다행인 것은 미국경제를 파악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종합해 볼 때 2002년 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최근 들어 경기회복의 마지막 불안요인으로 지적됐던 실업률 같은 고용지표도 개선되고 있어서 미국경제가 다시 한 번 침체된다는 이중침체(double dip) 시각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오히려 미국경제에 대해서는 ‘마냐나 경제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마냐나(Manana)란 스페인어로 ‘내일은 태양만 뜬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미국경제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예측기관들이 내놓는 내년도 미국경제 전망을 보면 잠재수준인 3.5%보다 훨씬 높은 4%대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일본경제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낙관론과 신중론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90년대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경기회복을 학수고대해 온 일본의 경제각료들은 2003년 이후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상승한 점을 근거로 지난 13년 동안의 장기침체의 골을 마무리하고 2004년에는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일본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경기이론상으로 특정 국가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회복세가 최소한 2~3분기 정도 지속돼야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경기회복세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일본경제의 구조적인 현안들이 아직까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국내총생산(GDP) 기여도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소비의 회복세가 여전히 미흡하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했으나 아직까지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일본경제를 ‘좀비경제’라 부른다. 일본경제가 회복되기 위해 또 하나 해결해야 할 과제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고이즈미 정부는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취임 이후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으나 오히려 부실채권 규모는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주요 예측기관들은 최소한 내년까지 일본경제는 신중론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시각이다. < 유로랜드(EU) 경제전망 > 2004년 유럽경제는 2003년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완만한 회복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대외적으로 미국경제의 회복에 따라 수출은 유럽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나 역시 유럽경제는 유럽통합 진전에 따른 자체적인 역내 성장 동인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유럽통합은 두가지 방향에서 진전되고 있다. 하나는 기존의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영국, 스웨덴, 덴마크가 언제 유로랜드에 가입하느냐는 점이다. 불행히도 이 문제는 올 하반기에 실시된 스웨덴의 국민투표 부결로 인해 당초 예상 일정보다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또 EU의 회원국 확대를 규정한 니스협약에 따라 2004년 5월 말까지 일정이 잡혀 있는 동유럽과 지중해 연안 10개국이 EU에 가입한다 하더라도 순조롭지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기존 15개 회원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것이 이 같은 시각의 근거다. < 중국 대체시장 > 2004년 세계경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 주목해야 할 국가가 바로 중국과 인도, 러시아 경제다. 한국 기업인들이 가장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중국경제에 대해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자전거 경제’(bicycle economy)라 부른다. 그만큼 고도성장 이면에는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중국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부실채권은 4,800억달러(약 560조원)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외환위기 초기에 국내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었던 부실채권 규모의 1.7배나 된다. 2올해 들어 실제 발생여부와 관계없이 중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업문제도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상태다. 최근 중국의 실업률은 10%가 넘어 우리나라 실업률의 3배를 상회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 중국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내부적인 문제점을 극복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중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가 이러한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예측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2004년에도 중국 경제성장률은 7%가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가 교역국과의 통상마찰 등을 감안해 성장전략을 ‘균형’ 쪽으로 수정할 것으로 보여 성장률은 다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국경제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성장세가 지속된다 하더라도 외국상품과 외국기업에 대한 견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 확실시된다. 통상적으로 중국 국민들의 1인당 소득이 1,000달러가 넘어설 경우 자국 국민과 자국 산업을 끌어안으려는 귀속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대체시장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 국가가 인도와 러시아다. 올해 들어 중국의 대체시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인도경제는 2004년에도 5%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인도는 우리나라처럼 소득불균형이 심한데다 1인당 국민소득이 400달러에 불과해 외국상품을 수입하는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경우 2004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00년 하반기 이후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혁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다 WTO 가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도 원칙적으로 러시아의 WTO 가입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분위기다. 또 WTO 입장에서도 세계경제경찰기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러시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러시아가 WTO에 가입할 경우 중국의 확실한 대체시장으로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경제협력이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협력 가능성이 높은 수직적 관계에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대외거래결제상의 불안정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가 WTO에 가입하면 이 같은 문제가 해소돼 양국간의 경제협력이 빠르게 진전될 전망이다. < 국제금융시장 전망 > 2004년 국제금융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마디로 올해와 마찬가지로 많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한해가 될 전망이다. 먼저 국제외환시장은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 달러화 가치는 모든 통화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세 혹은 약세기조를 띨 가능성이 낮다. 대신 각국의 경제여건에 따라 달러화 가치가 달라지는 차별화(de-coupling) 양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엔화에 대해 미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경제 기초여건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의 성장률 격차가 줄어들기 어려워 보이고 ‘달러 강세, 엔 약세’가 양국의 국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기관들은 2004년 엔/달러 환율은 105~115엔 범위 내에서 중심환율(pivot rate)이 유지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지속됐던 미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의 강세국면도 2004년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안정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유로화가 사용되는 유로존의 확대가 예상보다 순조롭지 못함에 따라 국제외환시장에서 유로화에 대한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기관들은 2004년 말에는 달러/유로 환율이 1.2~1.4달러로 올해 말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상승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4년 국제외환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최대 현안은 중국의 고정환율제가 포기된 이후 위안화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위안화 가치가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시각과 평가절상될 것이라는 시각이 맞서고 있는 상태다. 먼저 위안화 가치가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시각은 이렇다. 현재 중국 정부는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과 대규모 실업문제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더욱이 99년 하반기부터 내수시장을 겨냥해 추진해 온 경제대국형 모델도 아직 본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부실채권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전제를 감안하면 위안화 가치는 평가절하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중국의 수출상품은 품질과 같은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함에 따라 환율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해야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안화를 평가절하할 수 있는 시장여건이 뒤따라 주느냐는 점이다. 여러 시각이 있으나 앞으로 중국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경우 곧바로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외환보유고만 4,000억달러가 넘을 정도로 외환사정이 풍부하다. 이런 여건하에서 위안화 가치를 시장에 맡길 경우 풍족한 달러화 가치는 절하되고 위안화 가치는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중국 정부가 시장여건을 무시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할 경우 헤지펀드로부터 집중적인 환투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헤지펀드의 자금력과 레버리지(총투자가능액/투자원금) 비율을 감안하면 중국의 외환사정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환투기를 방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태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논의돼 온 중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상당히 큰 규모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국제금융기관들은 중국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이 약 4,800억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단 부실채권 규모로 본다면 충분히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동안 중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떠올린 기관들은 바로 이 점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금융위기국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실제 발생여부와 관계없이 중국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이 줄어들지 않으면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는 2004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리도 지난 3년간의 저금리시대를 마무리하고 상승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이론적으로 경제여건과 비교해 적정금리를 따지는 테일러 준칙(Taylor’s Rule) 등을 통해 볼 때 현재 세계 각국의 금리는 경제여건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만약 지금처럼 2004년에도 경기와 증시의 회복세가 지속될 경우 금리는 곧바로 경제여건에 맞게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설령 경기문제를 감안해 정책금리 인상이 더뎌진다 하더라도 세계 각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재원확보를 위한 국채발행이 증가할 것으로 보여 시중금리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올해보다 내년에는 우리 경제의 대외여건이 좋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근처럼 대외여건과 한국경제가 따로 노는 차별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정책당국의 주도력 부족과 노사분규 등 경제주체들의 이기주의 행동이 자제되고 신용불량, 카드채와 같은 경제주체들의 현금흐름상의 문제(minor crisis)가 해결될 경우 한국경제는 4~5%대의 회복세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한국경제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