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위에 헌법이 있고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농담이 있다. 국민정서법 위에 또 법이 있다고 하니 이 법의 이름은 ‘떼법’이다. 무리를 지어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참여정부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또 하나의 코드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만인의 만인을 대상으로 한 투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대입수능시험에서 3번을 답으로 썼던 학생과 학부형들이 우리가 손해를 봤다며 무리를 짓는 것도 그런 경우다. 기분이 나쁜 것과 그것으로 손해를 본 것은 엄연히 다르지만 간판을 내거는 것은 엿장수 마음대로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과 손해를 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을 대학은 과연 받아들여야 하나.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넘어서 있는 것, 다시 말해 ‘객관적인 것’의 상징으로 흔히 숫자를 말하고 숫자의 대표적인 것으로 ‘통계’를 말한다. 그러나 과연 통계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불행히도 통계는 오히려 조작되는 경우가 더욱 많고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최근 행자부가 발표한 실태조사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행자부가 발표한 ‘실태’ 조사는 불행히도 사람들의 오해에 편승해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을 뿐 사실관계를 파악해 진실을 드러내는 것과는 달랐다. 예를 들어 행자부 발표문을 보면 표지의 제목부터가 ‘서울 강남지역 다주택 소유자 평균 3.67주택 보유’로 되어 있다. “강남지역 5만5,000세대가 20만호를 소유하여 평균 3.67호를 소유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강남의 졸부들이 전국의 부동산을 싹쓸이해 그 엄청난 부동산 광풍을 만들어냈구나!” 하는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그런 제목이다. 행자부의 보도문은 6페이지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거의 3페이지가 강남 주민의 주택보유실태를 분석해 쓰여져 있을 정도이니 이 조사는 전국을 분석했다기보다는 차라리 강남을 분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행자부 발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이런 제목이 어울리지 않은지 모르겠다. ‘1가구 1주택자는 서울 전체가 72.6%, 강남이 80%로 오히려 강남 주민들이 투기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이 그렇다면 깜짝 놀랄 이야기지만 행자부의 조사결과는 분명 그렇게 나와 있다. 강남 다주택자들이 평균 3.67채나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자료 제목도 한 꺼풀만 벗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울의 다주택자들도 평균 3.24채를 보유하고 있다. 3.24채와 3.67채의 차이는 말 그대로 종이 한장 차이다. “강남에 사는 투기의 원흉들!”이라고 흥분할 만한 정도는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 전체로 2주택 이상 보유한 사람은 44만세대, 이중 강남 거주자는 5만5,000명이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오히려 적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행자부 자료는 ‘강남 5만여세대가 (무려) 3.67채나 소유하고 있다!’고 제목을 뽑고 있다. 팩트 자체가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의 왜곡된 이미지를 오히려 강화할 뿐 진실에 가까운 통계해석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오늘날의 강남 문제는 오히려 지방의 졸부들까지 ‘나도 강남에 집 한채’식으로 가세하면서 강남 집값을 올려놓았다는 것일 뿐 달리 이유가 없다. 숫자는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지만 잘못 인용되거나 악의적으로 혹은 무지의 결과로 왜곡되기 시작하면 오히려 오류만 확대재생산할 뿐인 것이다. 정부가 대중의 오류에 편승해 있어서야 제대로 된 부동산 대책인들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경제담당 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