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월례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어 직접 수출을 챙겼다. 월별 수출액이 차트로 보고되고 수출이 잘되고 있다는 보고가 행해지면 대통령의 얼굴이 밝아지고,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면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때문에 관계자들은 수출액을 늘리기 위해 직접 기업들을 찾아 다니며 독려했고 때로는 바이어들의 주문이 있기 전에 우선 외국에 나가있는 현지법인에 물건을 보내 놓고 그것을 수출로 잡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회의가 있을 때마다 재계 대표들은 자금과 세금 타령을 하는 것이 예사였다. 요컨대 "재무부 장관이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수출이 안 된다"는 말투였다. 이럴 때마다 나는 피고의 입장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긴축이 불가피함을 설명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서면서 나보고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청와대에 들어가자 박 전 대통령은 재무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나 기업의 호소를 들어주는 방법이 없겠느냐 하는 것이다. "남 장관, 쥐어짜지만 말고…" 두 손으로 빨래 쥐어짜는 시늉을 하는 대통령에게 물가안정을 위한 긴축정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설명하고 일본에서는 긴축 재정정책을 펴다가 암살당한 대신이 있었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장단기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하고 그 자리를 물러 나왔다. 24시간 수출만을 생각하는 대통령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