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과 건설업이 20%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이는데도 설비투자와 내수소비는 오히려 마이너스 폭이 커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6.25전쟁 이후 최대 국란(國亂)으로 꼽히는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처음있는 일이다. 제조업 가동률이 80%를 넘어설 정도로 공장이 잘 돌아가기 시작했는데도 설비투자가 거꾸로 감소한 것은 '미스터리'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한국 경제가 비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징후들이다. 세계 경제가 회복기로 접어들고 한국산 제품의 해외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인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지고 있다. ◆더욱 극단화되는 양극화 현상 10월중 수출용 제품출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 늘어났다. 반도체와 자동차 영상음향통신 기타운송장비 등의 해외판매가 늘어나면서 제조업의 공장가동률도 전달(9월)보다 2.3%포인트 높아진 81.1%를 기록했다. 6년6개월만에 최고치였다. 건설공사 역시 활발해 공사완성(기성)금액 기준으로 10월중 16.9% 증가했다. 수출과 건설업이 활기를 띠고 공장가동률이 80%대를 넘어서면 공장증설에 대비한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10월중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감소,전달보다 감소폭이 오히려 확대됐다. 수출이 급증한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에도 수출용 제품출하가 18.5% 늘어났다. 그러나 당시 공장가동률은 77.8%로 설비투자 압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설비투자는 소폭이나마 증가세(2.7%)로 돌아섰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제조업 가동률이 올라가는데도 설비투자가 감소하는 기현상은 국내 경제의 수수께끼"라며 "수출이 늘어나면 투자도 늘어난다는 공리(公理)가 현재의 한국 경제에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소비 심리불안이 주요인 김민경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특수산업용기계 분야에서 설비투자가 소폭 늘어났으나 컴퓨터와 자동차 분야에서 투자가 줄었다"고 말했다. 수출 주력상품인 컴퓨터와 자동차에서 설비투자가 감소한 것은 내수소비 부진으로 남아도는 국내 여유물량만으로 충분히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10월중 내구재 국내 소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2% 감소했다. 10월중 취업자가 15만명 늘어나는 등 고용사정이 개선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돈을 쓰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향후 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가 10월말 3백6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고 정부의 신용카드 사용억제 정책까지 겹쳐 소비를 더욱 위축시켰다. 기업인들은 정치권의 싸움과 기업비자금 수사 확대 등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10월 산업활동 동향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점들의 골이 여전히 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정부는 기업들이 정책방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률 수치는 올해 3% 넘어설 듯 산업생산이 지난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잠재성장률(5% 안팎)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확대됨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은 연간 3%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수출이 급증하고 건설경기도 연말까지 호조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경기 선행지수가 5개월째,동행지수는 3개월째 상승한 것도 경기가 바닥을 탈출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설비투자와 내수소비는 파경으로 치닫는 정치권의 정쟁과 사회 전반의 불안심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게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