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에는 연륜과 경륜이 쌓인 최고경영자(CEO)가 최고다.' 경기 부진과 회계부정 스캔들 등으로 최근 2∼3년간 최악의 상황을 겪은 유럽기업들 사이에서 '검증된 CEO' 영입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발(發) 엔론사태 등 대규모 부정사건으로 추락한 신뢰를 다시 세우고 주주들을 안심시켜 주가를 올리는 데는 '젊음'보다 '경험'이 필요하다고 믿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20∼30대 CEO들이 용기와 열정만을 무기로 위험이 많은 사업을 쫓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세계 3위 식품업체인 네덜란드의 아홀드는 올 초 회계부정 사건이 터져 주가가 폭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자 최근 앤더스 모버그(53)를 새 CEO로 앉혔다. 국내외 식품 및 가구업계에서 30년간 잔뼈가 굵은 인물인 그가 CEO로 선정되자 주가는 이내 안정을 찾았다. 제라르드 클라이스터리(56)가 2001년 4월 네덜란드 필립스의 새 CEO로 선출된 것 역시 '오랜 경력' 덕분이다. 그는 1974년 필립스 의료장비사업부에 입사한 뒤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치며 30년 가까이 이 회사에 몸담은 대표적인 필립스맨. 클라이스터리는 '확대경영'보다는 '안정경영'에 주력한 결과 연내 10억달러의 비용절감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밖에 제약업체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장 피에르 가니에(56),독일계 미디어그룹 베텔스만의 군터 티에렌(61),스페인 최대 은행 방코 빌바오 비즈카야 알젠타리아(BBVA)의 프란시스코 곤잘레스(59) 등도 30년 이상 동종 업계에서 한우물을 판 '나이든 CEO들'이다. WSJ는 "주주들은 젊은 CEO들이 단기 실적에만 연연하는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며 "경륜이 쌓인 CEO들은 최소 5년 후 주가까지 염두에 두면서 장기목표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 주주들로부터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