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프린터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약진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자가 브랜드 기준으로 2%에 불과한 시장점유율이 지난해에 9.6%로 뛰며 세계 3위 업체로 부상한 데 이어 올해는 1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변이 없는 한 휼렛패커드(HP)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에서는 부동의 1위 업체인 HP를 누르고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 프린팅사업부 박종우 부사장은 “2007년에는 레이저프린터 분야에서 HP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진입장벽이 높기로 소문난 프린터시장에서 삼성이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휴대전화 등과 함께 프린터를 7대 미래전략사업으로 발표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PC의 종속제품에 불과한 프린터가 미래전략사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것. 그러나 세계 시장 규모를 살펴보면 이런 의문은 사라진다. 2002년 기준으로 프린터 관련 시장규모는 100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메모리반도체시장이 40조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파이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파이를 잘라 접시에 담아 내오는 방법이었다. 프린터사업의 역사는 반세기에 이른다. 삼성이 프린터를 생산한 세월도 20년이 넘는다. 그러나 2년 전만 해도 세계시장에서 삼성의 존재는 미미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위주였기 때문에 제품의 라인업은 뒤죽박죽이었고 프린터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수익성도 악화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자가 브랜드 위주’라는 전략에 명운을 걸기로 결정했다. 2001년 박종우 부사장이 프린팅사업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부족한 제품 라인업, 취약한 영업 인프라, 떨어지는 인지도 등을 극복하기 위해 박부사장이 세운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시장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중국 등 주변부 시장을 공략 포인트로 잡았다. 선진국 시장은 여러 업체가 혼전을 벌이는 까닭에 빈틈이 거의 없지만 HP가 과점한 주변부 시장은 상대적으로 빈틈이 많았다. 또 해당지역에서 삼성전자의 인지도가 높아 ‘삼성 프린터’라는 브랜드를 알리기도 수월했다. 삼성은 TV, 잡지, POP 등 각종 매체와 현지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브랜드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품목의 경우 레이저프린터에 집중했다. 기술과 가격 면에서 잉크젯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제품의 라인업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해 2~3개에 불과한 신제품 출시를 7~8종으로 늘렸다. 또한 원가절감을 통해 가격경쟁력도 확보했다. 시스템온칩(SOC) 기술 같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이용, 부품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 등 140여개의 유력 매체에 우수제품으로 선정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입찰, 리셀러, 소매시장으로 구분되는 프린터시장 가운데 소매시장에 역량을 집중했다. 대부분의 기관 IT 관리자들은 기존의 브랜드를 고집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제품이 좋으면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제품에 자신이 있는 삼성이 소매시장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박부사장은 “소중한 성과를 이루긴 했지만 작은 승리에 불과하다”며 “프린팅산업에서 최고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일부지역에서, 그것도 레이저프린터 한 품목의 성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내년부터 미국, 유럽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다. 시장공략을 위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됐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우선 소매시장 유통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시장에서 삼성의 시장점유율은 6~7% 정도에 불과하다. 2000년에 8개의 지역체인망을 보유한 작은 전자제품 전문점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적 판매망을 가진 대형 전자제품 유통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취약한 리셀러 채널 확보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시장과 사용환경에 최적화된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솔루션마케팅센터를 확대한다는 방안도 세워놓고 있다. 병원, 학교, 정부 등은 일반 사용자와 다른 프린팅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ESM(European Solution Marketing)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어서 고무적이라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고급품 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그간 삼성은 보급형 레이저프린터와 복합기에 초점을 맞춰왔다. 기술력이 다소 부족한데다 인지도 확보를 위해 보급품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올해 말 컬러레이저프린터 출시를 기점으로 고급품 시장으로 영역을 넓힐 방침이다. 이를 위해 경쟁사와 제휴도 마다하지 않을 예정이다. 지난 11월 HP와 제휴, 잉크젯프린터를 ODM 방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과거 프린터는 PC에 종속적이었지만 점차 독립적인 제품이 되고 있다. PC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TV, 디지털카메라 등 각종 기기와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등 기술융합 추세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래의 프린터시장에 대한 삼성의 자신감은 어느 기업보다 강하다. 프린터 기술 외에 반도체 기술, 통신기술, 가전기술 등 미래의 프린터가 요구하는 거의 모든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 [ INTERVIEW | 박종우 삼성전자 부사장 ] “차세대 프린팅산업 글로벌 리더 될 것” 프린팅사업부장으로 부임하기 전 박부사장은 ‘미스터 반도체’로 통했다. 89년 ‘1기가 D램’을 개발한 것을 비롯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개발을 진두지휘해 왔기 때문이다. 최고의 반도체 개발자인 그가 프린팅사업부장으로 임명된 것은 의외였지만 삼성전자가 프린팅사업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 프린터 성장의 주역으로 박부사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부임한 지 2년 만에 삼성 프린터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주인공이라는 설명이다. OEM 위주에서 자가 브랜드 중심의 사업 전환도 전적으로 그의 아이디어였다. 박부사장이 내건 모토는 ‘Think differently, Act differently’였다. 창의적인 사고를 하라는 주문이었다. 또 직급의 상하를 막론한 ‘치열한 토론’ 문화를 강조했다. 아이디어의 가치와 직급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 부하직원의 다른 의견을 괘씸하다고 여기다가는 회의자리에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개방적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박부사장은 한달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낸다. 현지 시장을 검토하고 사원들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지난 10~11월에는 국내 체류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할 정도로 현장을 중시한다. 기본적인 경영전략도 ‘Market Driven Company’, 즉 ‘고객 최우선 전략’으로 세웠다. 이를 위해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소매점 세일즈맨도 자주 만난다. “경쟁사에 비해 영업인력이나 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일즈맨 개개인의 능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신이 팔고 있는 제품과 시장을 모르는 세일즈맨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한사람 한사람의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질문에 답을 못하면 혼찌검을 내는 일도 간혹 있지요. 요즘은 제가 모르는 일도 척척 설명하는 직원들이 있을 정도로 영업마인드가 향상됐습니다.” 국내 유일한 프린터 생산업체라는 것에 박부사장은 큰 의의를 둔다. 광학, 화학, 공학 기술 외에 통신, 컴퓨터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해 기술장벽이 높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디지털 컨버전스 추세에 따라 삼성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차세대 프린팅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