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 “위하여!” 지난 9월17일 오후 8시.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쩌렁쩌렁한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날은 빌트인 가전과 욕실용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엔텍 직원들의 ‘호프데이’다. 두달에 한번꼴로 갖는 ‘호프데이’를 엔텍의 직원들은 늘 기다린다. 박진우 사장(39)을 비롯한 전직원이 서울 강남의 대형 호프집에 모여 맥주잔을 부딪쳤다. 생맥주를 마시고 오징어, 땅콩을 씹으며 나누는 얘기에 왁자지껄했다. 맥주홀은 동료들과 못다한 얘기꽃을 피우느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모처럼 업무를 잊고 전직원이 하나가 돼 맘껏 마시는 것이 마냥 즐겁다”고 말했다. 박진우 사장은 에넥스 박유재 회장의 셋째아들이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사장은 지난 91년 대학졸업과 함께 제일공업에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박사장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제일공업은 지난 86년 말 부친인 박유재 회장이 에넥스의 식당용 주방설비 사업부문을 떼어내 설립했다. 박회장은 회사를 설립하면서 레인지후드사업을 추가했다. 에넥스의 후광으로 탄생한 제일공업은 88년에는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고급형 레인지후드 납품을 성사시키면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박사장은 “당시 일반적인 레인지후드 가격이 개당 2만원에 불과했는데 제일공업이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공급한 것은 무려 8만원대였다”고 전했다. 그는 “이는 부친의 고집스러운 연구개발로 이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사장이 입사해 처음 맡은 부서는 기획실. 서류심부름이나 하는 말단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 박사장은 “부친의 권유로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2년 넘게 있으면서 사내 전산화를 도맡아했다. 93년 6월에 에넥스하이테크로 자리를 옮겨 영업현장을 누볐다. 이 회사는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해 고급 욕조를 만드는 회사로 박유재 회장이 사재를 털어넣어 설립했다. 박사장이 옮겨올 때쯤 생산품목에 정수기도 추가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박사장은 정수기 영업을 맡아야만 했다. “처음 자리를 옮겼을 때 영업조직이라는 것이 없었죠. 영업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고민이 많았어요.” 박사장은 “이왕 시작한 것 한번 부딪쳐 보자. 안될 게 뭐 있겠느냐”며 매일 현장으로 나갔다. 박사장은 한번은 현장에 부하직원과 영업을 나갔다가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정수기를 설치하면서 수도관을 제대로 만지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입사한 지 한달도 안된 풋내기 직원이 척척 해내는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박사장은 “낮에는 영업을 하고 저녁에는 회사에서 정수기를 뜯고 조립하며 남몰래 기술을 익혔다”고 털어놓았다. 박사장은 영업팀장으로 있던 2년여 동안 2만여세대에 가정용 정수기를 팔았고 중앙집중식 정수처리장치도 20개 아파트 현장에 설치하는 등 혁혁한 실적을 냈다. 영업현장을 경험한 박사장은 95년 6월 다시 친정인 제일공업으로 돌아왔다. 기획업무를 총괄하며 회사를 다듬어갔다. 사명을 엔텍으로 바꾸고 사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업이미지통합(CI) 작업을 했다. 인력재배치를 통한 조직효율성을 높여 나갔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인력을 10% 가까이 줄였다. 이러한 박사장의 앞날을 내다보는 경영은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게 했다.IMF 때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을 했지만 다른 업체들처럼 요동칠 만큼의 변화는 없었다. 물론 흑자경영을 내는 등 경영수완도 발휘했다. 지난해는 에넥스하이테크를 흡수합병하고 이 회사에서 하던 욕실사업을 신규아이템으로 추가했다. 에넥스하이테크의 대표로 있던 큰형 박진규 대표는 에넥스 부회장으로 옮겨갔다. 이사, 부사장을 거치며 탄탄한 경영수업을 받은 박사장은 지난 5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대표이사를 맡으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어요. 막상 대표이사가 되고 나니 책임감이 더 무거워지고 긴장의 연속인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박사장은 대표이사가 된 후 가장 먼저 회사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가 대표이사 취임식에서 밝힌 청사진은 단 한줄. ‘오는 2005년까지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자.’ 이를 위해 우선 내년 중에 가전제품군과 욕실용품군을 대표할 브랜드를 런칭하기로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방부문과 욕실부문이 회사의 양대 축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주방부문은 식기건조기, 레인지후드, 쿡톱, 반찬냉장고, 냉장고 등 빌트인 가전제품으로 특화하기로 했다. 욕실부문은 최근의 재건축 리모델링 시장이 팽창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이 분야의 영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박사장은 “욕실부문은 내년부터 전담팀을 두고 시장을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도기점 중심의 판매방식을 욕실용품을 종합 구성한 직영 유통조직망으로 갖춰 나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박사장은 내년부터 수출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빌트인 가전업체들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치열해지고 있는 내수시장에만 의존해서는 한계에 부닥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엔텍은 지난해 일본에 처음으로 77만달러의 소규모 수출을 했다. 수출품목은 레인지후드다. “6개월 동안 일본인 특유의 꼼꼼한 테스트를 통해 이뤄진 결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데 기쁨이 컸죠.” 엔텍은 내년에 일본과 미국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해 180만달러 이상의 수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물론 독자 브랜드(NTEC) 수출전략이다. 엔텍은 매출액 대비 1%를 연구개발비로 투입하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향후 매년 연구개발비를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기술개발을 통해 지난 10월에는 한국표준협회로부터 레인지후드분야 KS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사장은 회사의 주요 사안에 대해 박유재 회장과 상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영을 독자적으로 한다. 박사장은 “대표이사가 된 이후 지금까지 경영 때문에 회장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적이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충북 영동과 옥천에 공장을 두고 있는 엔텍은 올해는 전년 대비 30% 가까이 신장된 500억원을 매출목표로 하고 있다. 박사장은 “11월 말에 있을 호프데이가 기다려진다”며 환하게 웃었다. (02-3218-7610) 이계주ㆍ한국경제 벤처중기팀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