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의 기업’으로 불려온 매일유업의 외출이 잦아졌다. 남양유업과 더불어 국내 유가공업계의 양대 강자로 통하는 매일유업은 그동안 비관련 업종으로 한눈을 팔지 않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왔기에 다소 보수적인 사풍을 가진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변화에 둔감하다’는 기존 관념은 지워야 할 것 같다. 2001년 인터넷사업에 진출하며 조심스레 성문을 열더니, 이제는 성문을 활짝 열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CEO의 의지가 무척 강하다. 지난 10월29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자회사(IDR)와 에듀토피아중앙교육의 제휴식이 있었다. 이날 김정완 매일유업 사장(46)은 목디스크로 인해 회사 출근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참석했다. 이는 김사장이 사업다각화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어떻게 변신하나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한다는 것일까. 새로 진출하는 사업은 ‘위성도시’ 개념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우유, 분유 등 냉장 분야의 기존 진지는 더욱 강화한다. 아울러 ‘육아 케어’ 및 ‘기능성(준의약품 수준) 식품’ 분야에서 주변진지를 구축해 더욱 강한 기업이 되겠다는 게 기본 전략이다. 이를 위해 연간 400억~5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먼저 육아 케어 분야에서는 최근에 에듀토피아중앙교육과의 제휴를 통해 교육사업에 뛰어드는 동시에 기존 포털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교육사업은 업계의 강자인 에듀토피아중앙교육과 손잡고 ‘아이큰숲’이라는 브랜드로 진출한다. 또 포털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에듀토피아중앙교육으로부터 ‘제로투세븐’도 인수했다. ‘제로투세븐’은 육아 전문포털의 선두주자. 이렇게 되면 남양과 불꽃 튀는 대결을 벌였던 육아 포털사이트인 우리아이닷컴이 강력한 원군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의류사업도 욕심을 내는 분야다. ‘알로&루’라는 브랜드로 내년 1월부터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공략할 계획이다. 건강식품 분야에서는 11월부터 미국 메리산트사에서 생산한 저칼로리 천연감미료 ‘이퀄’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이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치즈 및 와인 사업 등과 함께 식품분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포석이다. 이와 함께 건강보조식품, 환자를 위한 식품, 질병예방을 위한 준의약식품 등의 첨단식품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김사장은 “전공인 유아식을 중심으로 노인식에 이르는 ‘전 생애 시스템’을 구축해 ‘건강=매일유업’이라는 새 등식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왜 변신을 꿈꾸나 매일유업은 유가공시장에서 남양유업과 쌍벽을 이루는 강자다. 해마다 150억~200억원의 순이익을 꼬박꼬박 올리는 알짜배기 회사다. 기업문화도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것을 싫어한다. 실적에 비해 주가도 낮은 편이다. 11월5일 현재 3,440원(액면가 500원)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홍보실과 IR팀이 애를 먹는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1분기 적자를 봤던 매일유업은 2, 3분기를 거치면서 순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에 홍보실에서는 실적추이를 그래프까지 그려 언론용 보도자료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만 잘하면 됐지, 뭐 그렇게 자랑하려고 드느냐’는 경영진의 반대로 서랍 안에 도로 집어넣어야 했다. 어찌 보면 위험부담을 안고 변신을 서두를 이유가 없을뿐더러 변신이 쉽지 않은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김사장은 생각을 달리한다. 5년, 10년 뒤를 준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성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매일유업은 두가지 딜레마를 안고 있다. 유가공업계 공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하나는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65만명에서 지난해 49만명으로 낮아졌고 올해는 45만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영유아를 대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매일유업 입장에서는 시장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외국기업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쯤에 일본업체들도 상륙을 준비하고 있어 시장쟁탈전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만년 2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매일유업은 이전까지 ‘만년 2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분유에서는 남양유업에 계속 밀렸고 우유에서도 서울우유에 밀렸다. 따라서 ‘만년 2등’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도 97년 CEO에 오른 김정완 사장의 절체절명의 숙제였다. 김사장이 공격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이런 이유가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지킬 것은 지키면서 변신한다 하지만 매일유업은 무리하게 ‘변신’을 도모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는 그동안 추구해 온 기업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매일유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신용’(신뢰)이다. 이는 창업주인 김복용 회장(83) 시절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김회장이 창업 전에 한때 담배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때 남들은 바깥에는 좋은 담배를 넣고 안에는 질이 떨어지는 담배를 넣었다. 하지만 김회장은 거꾸로 바깥에 나쁜 담배를 넣고 안에 좋은 담배를 넣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잘 안 팔렸지만 몇 년 뒤에는 누구나 알아주더라는 것이다. 매일유업이 그동안 수익성이 거의 없는 특수분유를 만들어 온 것도 이런 기업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령 8종의 ‘매일 스페셜 포뮬러’의 경우 월 판매량이 미미한 형편이지만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특정 아미노산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가 결핍됐거나 그 활성이 낮은 유아에게 필요한 것. 그동안 수만명 중 한명꼴로 발병하는 특수질환이라는 이유로 수입품에 의존해 왔으나 매일유업이 개발하면서 비싼 수입제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됐다. 따라서 사업다각화의 방향도 철저하게 육아 및 건강과 연관되는 분야로 한정해 놓고 있다. 즉 ‘지킬 것은 지켜가며 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사장은 “서두르지 않겠다”며 “유연한 확장”고 강조한다. 느리더라도 충실하게 신용을 지키며 하다 보면 언젠가는 1등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5년 뒤 매일유업의 기업색깔이 궁금해진다. 매일유업은 69년 한국낙농가공(주)로 출발했다. 73년 일본 모리나가 유업과 조제분유에 대해 기술제휴, 매일분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81년부터 조제분유 6만캔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수출한 뒤 세계 2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2001년부터 육아 포털사이트 우리아이(www.urii.com)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7,000억원, 순이익 200억원을 올렸다. 이는 매년 평균 15%이상 성장한 것. 이밖에 매일뉴질랜드치즈(주), 코리아후드서비스주식회사(식자재공급 물류회사), (주)레뱅드 매일(와인업체), IDR 등 4개의 관계사를 두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