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물류기업의 하나인 DHL.세계 2백30개국 12만개 지역에 네트워크를 갖춘 DHL은 장기적으로 한국을 '아시아 허브'로 삼을지 고민 중이다. 지정학적 위치는 괜찮지만 물류 인프라가 취약하고 내수 시장은 협소하며 노사관계도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하헌구 교통개발연구원 박사는 "세계 4대 물류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를 유치하느냐는 동북아 물류중심지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요소"라며 "파격적 조건을 내세워서라도 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4대 물류기업 유치 효과=DHL 페덱스 UPS TNT 등 '글로벌 빅4'가 한국을 아시아 허브로 삼을 경우 이에 따른 부수적인 경제효과는 엄청나다. 아시아 지역 화물이 일단 한국에 모여 다시 최종 목적지로 배분되는 까닭에 한국에 기착하는 화물기 수가 현재의 수십∼수백배로 늘어난다. 따라서 환적 및 배송을 위한 시설 수요와 고용창출 효과도 상당하다. 또 부수적으로 외국기업도 쉽게 유치할 수 있게 된다. 배광우 DHL코리아 사장은 "세계적인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때 도로 항만 등 기본적 인프라 외에 물류망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를 따진다"며 "'빅4'가 진출해 있다면 외자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리적 요건만 좋다'=DHL은 9백평 규모인 인천공항 내 물류기지를 2006년께 6천평으로 확충하면서 한국의 역할도 한단계 끌어올리기로 했다. 지금은 몽골,괌,사이판,중국의 다롄 칭다오,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의 화물에 대해서만 한국이 허브 역할을 하지만 앞으로는 중국 톈진,일본,호주 일부지역까지 넓힌다는 얘기다. DHL이 한국 투자를 확대키로 한 것은 '반경 2천㎞ 내 인구가 14억명으로 싱가포르(3억5천만명)의 4배에 달하는 데다 세계의 물자 공급기지로 떠오르는 중국과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문제점들이 한국을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DHL의 아시아 허브로 키우려는데 발목을 잡고 있다. 부족한 국제 물류인프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 비해 협소한 내수시장 △국제특송의 주고객인 외국기업 유치의 부진 △불안정한 노사관계 △복잡하고 자의적인 행정규제 △낮은 국제화 수준 △외국 물류기업에 대한 차별 △불확실한 남북관계 등이 그것이다. 경쟁국에 비해 한국이 제시하는 유치 조건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배 사장은 "중국은 외자유치를 위해 정부가 땅도 주고 노사분규도 처리해주며 행정절차도 최단시일 내에 처리해준다"고 말했다. 정명수 UPS 한국지사장도 "현재 아시아 허브로 사용하고 있는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부근은 인프라가 잘 깔려 있고 보안시설도 완벽하다"며 "인건비도 싸고 언어소통 문제도 없어 아시아 허브를 한국으로 바꿀 만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물류업도 육성해야=낙후된 국내 물류산업도 동북아 물류중심지 계획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에서 드러났듯이 국내 물류업계는 5대 미만의 차를 가진 화물업자가 전체의 97.5%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하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전문 물류업체가 기업의 물류를 처리해주는 '제3자 물류비율'은 9.3%로 미국(65%) 및 유럽(76%)에 비해 턱없이 낮은 형편이다. 물류업계는 정부에 △물류시설 용지보다 분양가가 절반 이상 싼 공장시설용지 입주를 허용해주고 △일반 전력요금보다 30% 이상 싼 산업용 전기료를 적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동북아 물류허브'라는 구호는 많지만 정작 국내 물류업계는 소외되고 있다"며 "국내 물류업계를 그대로 둔 채 동북아 물류중심지가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