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북부의 토나완다시에 살고 있는 케네스 맥빈 슈라이버씨는 요즘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난 9월 중고품가게 ‘덴디스터프’를 차린 슈라이버씨.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마냥 즐겁다. 중고품을 사러 다니는 것도, 손님과 흥정하는 것도 신나고 재미있기만 하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오랜 친구처럼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쾌활한 성격의 슈라이버씨에게 중고품가게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올해 52세인 슈라이버씨에게 중고품가게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미국에서 이른바 ‘황혼 창업’이 늘고 있다. 50세가 넘어서 창업을 하는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 고령자의 권익을 추구하는 비영리단체인 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가 50~70세의 성인 2,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6%가 창업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황혼 창업이 확산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평균연령 상승에서 찾을 수 있다. 실버세대 가운데 상당수가 은퇴 후에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창업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버세대의 상당수는 지금도 사회에서 당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AARP에 따르면 은퇴한 사람의 76%가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실버세대에게 돌아가는 일은 비교적 단순한 것에 한정돼 있다. 슈퍼마켓에서 점원을 보조하거나, 관공서에서 고객을 안내하는 것이 고작이다. 한평생 일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황혼 창업의 증가 추세는 사회에서 좀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실버세대의 바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황혼 창업 가운데는 순수 여가활용 차원도 많다. 은퇴 후 늘어난 여가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려고 창업을 하는 것이다. 골동품가게 ‘지지앤틱’을 운영하고 있는 데이브 클락씨가 이 같은 경우다. 그는 ‘은퇴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심심해서’ 창업을 했다. 올해 59세인 클락씨는 개인적으로 골동품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 청나라, 명나라의 골동품에도 조예가 깊다. 그는 골동품가게에서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골동품을 구하러 여행을 가기도 한다. 클락씨는 “나이가 들었다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육체건강, 정신건강에 모두 좋지 않다”며 “항상 바쁘게 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혼 창업의 동기 가운데 경제적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일부 실버세대는 퇴직금과 연금만으로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회사를 그만둔 퇴직자들은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서 황혼 창업에 적극적이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세대에게는 재취업 기회가 적어 창업을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 황혼 창업의 특징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은퇴를 했기 때문에 대출을 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후의 보루인 퇴직금을 쓰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최소비용으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많이 찾고 있다. 슈라이버씨는 중고품가게를 여는 데 총 8,000달러를 썼다. 점포임대비와 초도물품비가 전부다. 중고품을 취급하는 만큼 초기자본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중고품가게는 약간의 여유자금만 있으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며 “중고품을 팔려는 사람은 대개 필요가 없어진 것을 처리하려는 것인 만큼 싸게 매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고품가게는 큰돈을 벌지는 않아도 이윤은 의외로 짭짤하다. 중고품을 싸게 사서 약간 손을 본 후 적당한 이윤을 붙여 되팔기 때문이다. 중고품 가격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다. 슈라이버씨는 “얼마 전 부서진 책장을 2달러에 사서 수리한 후 10달러에 팔았다”며 “마진이 보통 5~6배 정도”라고 귀띔했다. 때로 새것과 다름없는 물건이 싸게 들어오기도 한다. 급히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멀쩡한 물건을 헐값에 넘기기 때문이다. 슈라이버씨는 “중고품가게를 오픈한 지 겨우 한달이 지났지만 대충 손익이 맞다”며 “1년 정도 지나면 연간 순수익이 2만~3만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혼 창업도 비즈니스인 만큼 리스크를 안고 있다.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는 시장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야 한다. 설령 취미생활로 시작하더라도 초기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실패할 경우 손해가 따르기 때문이다. 최대한 리스크를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황혼 창업도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시장성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상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충분한 수유가 있어야 한다. 은퇴하기 전에 특정 분야의 전문가였다고 해서 비즈니스가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시장성과 함께 효과적인 마케팅과 광고도 창업 전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휴먼 네트워크 구축도 중요하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인맥을 쌓을 필요가 있다. 특히 사업을 하다가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부딪쳤을 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창업 컨설턴트들은 “휴먼 네크워크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때로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 워싱턴에서 50세 이상 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컨설팅회사인 ‘MJT컨설팅’을 운영하고 있는 메를린 텔렌즈씨는 “황혼 창업은 대개 소자본으로 시작하지만 필요할 때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황혼 창업자들은 기회가 있어도 퇴직금 날릴까봐 겁을 내고, 대출을 받는 것도 꺼린다”며 “비즈니스는 적정한 수준의 투자가 없으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황혼 창업자들이 갖춰야 할 능력 가운데 하나가 기본적인 컴퓨터 지식이다. 지금은 컴퓨터 없는 비즈니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컴퓨터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인터넷으로 비즈니스의 상당부분이 이뤄진다. 황혼 창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려면 컴퓨터 지식 습득은 기본이다. 다행히 고령자의 컴퓨터 사용은 느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인 포레스트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55~64세 성인의 인터넷 사용은 지난 2001년 55%에서 64%로 늘어났다. 황혼 창업이 활발해지면서 창업을 돕는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AARP는 최근 비즈니스센터를 열었다. 비즈니스를 운영할 때 필요한 각종 정보는 물론 사무실에 필요한 용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AARP는 지난 1958년 설립됐으며 회원이 3,500만명에 달한다. AARP 외에도 50세 이상의 황혼 창업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실버세대는 신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3,3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오는 2030년에는 20%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사회의 황혼 창업 바람은 고령화사회가 갈길을 보여주고 있다. 혈기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실버세대가 급증하는 시대에 황혼 창업은 단순히 고령화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노인들의 지혜를 사회에 환원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마음이 젊은 실버세대. 그들에게 나이는 TV 드라마 대사처럼 숫자에 불과하다. zeneca@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