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문제는 여전한 논란거리다. 쉬운 판단일 수는 없다. 고선지 장군이 무슨 이유로 고비사막을 넘어야 했는지는 자세히 알아볼 도리도 없지만 몽골의 일본 원정군에 고려가 가담한 것이나 베트남전쟁에 맹호부대 등 전투병을 보낸 것들이 모두 한국의 대외군사활동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워낙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다 보니 외국에 군대를 보내는 따위부터가 그다지 익숙지는 않아 낯을 가리게 된다. 외국에 식민지를 두어 본 적도, 다른 민족을 다스려 본 적도, 제국을 건설해 본 적도 없으니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모든 종류의 전쟁에 반대하는 - 물론 내부에서 찢어져 싸우는 것은 빼고 -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도 한 것 같다. 사실 밖으로 뻗어나가지를 못하다 보니 좁아터진 안에서만 서로간에 죽으라고 싸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 조그만 봉제공장이라도 낸 기업가들은 걸핏하면 현지 근로자들을 잘못 다루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그들의 사모님들은 벼락부자 흉내를 내면서 현지 가정부들과 심심찮게 인종차별이니 인격모독이니 하는 시빗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국가 차원의 해외경영 경험이야말로 세계화된 지구촌을 살아가는 데 필수자산이라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당나라에 만들어졌던 신라방이 오늘날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 같은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해외거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이고 보면 그것이 군대건 민간업자건 부지런히 해외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날 이나마 한국인이 세계화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모두 월남전과 독일 간호사 파견과 중동건설 당시 이국으로 떠났던 근로자들이 그곳을 거점으로 해서 또 한번 세계로 흩어져갔기 때문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라의 힘이라는 것은 어떤 명목으로든 뻗어나가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고 ‘오로지 평화’와 ‘내부로 돌려진 시선’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결정을 환영하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집권 8개월여 동안의 허다한 우여곡절을 겨우 수습하는 것이고 이제야 국가의 좌표를 제대로 잡는다는 측면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외쳤을 때 그것이 국가위치의 재조정, 재정립을 의미하는지는 치열한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렇지 않아도 반미 데모와 촛불시위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기존의 태평양 동맹구도를 깨고, 다시 말해 해양국가로서의 한국을 버리고 중국과 북한을 기반으로 하는, 소위 대륙국가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는지가 논란의 초점이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국이 다시 미국의 라인에 서기로 한 것은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 파병이 갖는 경제적 의미라는 것이 단순히 복구사업에 참여해 구전을 나눠 갖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한국이 여전히 국제적인 플레이어라는 선언이며 해양국가로서 세계라는 필드에서 계속 뛰기를 원한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명분도 없는 남의 나라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한국이 작금의 독일이나 프랑스를 흉내낼 수는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라고 해봤자 그들의 이라크 유전개발 이권을 보장해 달라는 대미 투쟁에 다름 아니다. 개인과 가정의 자존심도 그렇지만 국가의 자존심이야말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력이 없다면 다만 허공에 뜬 구호일 뿐이다. 국가의 위치를 정확히 잡는 것에서 국정은 출발한다. 집권 8개월 만에 이제 겨우 단추 하나를 채웠다.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경제담당 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