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m의 거리는 1초의 '무다(ムダ.낭비)'를 발생시킵니다. 한 발자국을 움직이면 0.8초, 몸을 90도 움직일 때는 0.6초의 무다가 생기죠. 우리는 초 단위ㆍcm 단위로 무다를 제거합니다." 도쿄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캐논 아미 사업장의 헤이키치 가토 부공장장은 공장 현황을 설명하면서 무엇보다도 무다 제거를 강조했다. "무다의 제거, 그게 바로 우리가 도입한 도요타 방식의 제1원칙입니다." 아미 사업장은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도요타식 시장대응형 생산 시스템의 '교본'으로 평가받는 곳. 카메라를 만드는 규슈의 오이타 공장이 캐논의 '얼굴'이라면 아미 사업장은 복사기 등 캐논 이익의 70%를 차지하는 사무기기 생산을 총괄하는 캐논의 '심장'이다. ◆ 컨베이어 벨트를 뜯어내라 1999년 10월 아미 사업장은 PEC(일본생산교육센터)의 권유에 따라 공장내 깔려 있던 2천6백49m의 컨베이어벨트 라인을 철거하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일단 부품이 투입되면 생산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품이 얼마나 팔리느냐는 고려할 수없는 시스템이죠. 생산효율을 높일수록 재고만 늘어났습니다. 판매회사도 밀어내는 제품을 보관하기 위해 창고를 더 지어야만했어요. 그 부담이 곧 비용 아니겠습니까."(가토 부공장장) 생산성과 효율성에서 셀 방식의 우위는 검증됐다. 우선 리드타임(lead-time)이 단축됐다. 당시 복사기를 생산하는 컨베이어 벨트 라인에는 60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제품 1대의 평균 생산시간은 2시간. 1명이 2분씩 작업을 하고 다음 공정으로 넘기는 식이었다. 이 방식은 그러나 공정 마지막 단계에 있는 작업자는 근무시작 초기단계에서는 할일 없이 놀 수밖에 없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셀 방식은 직원들의 의식도 바꿔놓았다. "1인당 작업분량이 2분에 불과한 컨베이어 벨트와 15분 이상인 셀 구조는 일하는 방식이 전혀 달라요. 컨베이어 벨트는 직원들에게 일을 당한다는 수동적인 의식을 가지도록 만드는 반면 셀 방식은 직원들이 내가 제품을 만든다는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합니다."(마사오 요시다 생산혁신 담당매니저) 셀 방식도입으로 정신적 만족감이 높아지면서 1인당 생산성은 1.5배나 높아졌다. 8인셀의 경우 제품 1대 생산시간은 2시간, 1인당 작업분량은 15분. 숙련도가 낮은 직원으로 인해 작업지체가 발생할 경우 다능공(多能工)들이 투입돼 전체 공정속도를 맞춰준다. 혁신활동으로 생산라인의 작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캐논에서는 '활인(活人)'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다. 캐논은 셀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전 사업장에 걸쳐 54만㎡의 공간을 '살렸고' 1만7천명을 생산 이외의 다른 업무에 투입시켰다. ◆ 도요타식 DDD시스템 도입 캐논은 일본내 판매를 위한 중간창고를 두지 않는다. 셀 방식으로 전환한 뒤 DDD(Direct Delivery to Demand)로 불리는 도요타식 시장직결형 생산시스템을 도입한 덕분이다. 캐논의 전 공장은 대략의 생산계획을 2개월전에 수립한 뒤 1주 단위로 시장과 주문상황을 반영해 생산계획을 확정짓는다. 아미 사업장은 8인셀을 기본으로 6인, 4인, 2인, 1인 셀 등 작업자의 숙련도와 주문 정보에 따라 매일 바뀌는 작업계획을 갖고 있다. 셀 방식을 도입한 후 재고가 없어졌고 7개의 자동창고도 폐기됐다. 3∼4일전에 주문하면 원하는 복사기를 설치까지 끝내주는 유연생산체제가 가능하다고 캐논은 자랑한다. DDD시스템은 완제품의 생산과 판매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도요타식 JIT는 협력업체와의 거래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는 작업자 사이의 공간을 좁힌 셀 방식으로 생산시스템이 바뀌면서 공간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가능했다. 제조와 포장, 출하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여유공간이 생겼을 뿐 아니라 협력업체도 입주시켜 생산계획을 공유하면서 물류비를 줄이게 된 것. 당연히 부품을 쌓아놓는 공간도 사라졌다. ◆ '다윈(Darwin) 프로젝트' "재고가 줄면서 자본 회전기간도 40% 단축됐다. 매출이 늘지 않아도 캐시플로(현금흐름)가 좋아져 이익이 늘어났습니다."(이쿠오 소마 광학기기 본부장) 경상비용의 감소는 캐논의 사업 보고서에 그대로 나타난다. 1999년과 비교, 지난해 매출은 16.1% 늘어난 반면 순익은 무려 1백71% 증가했다. 매출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러한 혁신의 방식을 캐논에서는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의미의 '다윈 프로젝트'로 부르고 있다. 아미 사업장에는 요즘 신일본제철 등 거래기업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 '도요타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혁신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마 본부장은 "도요타가 캐논보다 10년 이상 앞서 있지만 우리도 열심히 도요타를 좇고 있다"며 "따라잡아야 할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 캐논의 성장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고 강조했다. 이바라키현=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 특별취재팀 =양승득(도쿄특파원) 우종근(국제부 차장) 이익원 이심기 정태웅 김홍열(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김영우(영상정보부 차장) 허문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