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사는 회사원 A씨는 며칠 전 한 자동차 회사의 영업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할부로 차를 사기로 계약하고 선수금까지 냈지만 할부구매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 "최근 신용카드사에서 현금서비스를 몇 차례 받아 며칠 연체한 것을 꼬투리삼아 캐피털사가 대출을 해주지 않겠다는 거예요. 목돈은 없는데 할 수 없었지요. 결국 자동차 구입을 포기할 수밖에요." A씨의 하소연이다. 담당 영업사원도 "할부금융사와 카드사의 신용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자동차 할부구매가 전에 없이 어려워졌다"며 "요즘 같으면 정말 죽을맛"이라고 끌탕을 했다. 자동차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 7월 정부가 특별소비세를 인하하고 업계가 할인 등 각종 혜택을 제시하고 있으나 한번 얼어붙은 시장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7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국내 자동차업계의 내수판매 규모는 9만5천6백5대. 작년 같은 달보다 23.1%나 줄어든 규모다. 12만5천1백7대에 달했던 지난 1월보다는 약 3만대가 감소한 것. 자동차 판매 부진은 경기부진 탓만은 아니다. 카드사와 캐피털사가 신용대출을 엄격히 제한, 자동차 할부구매가 어려워지면서 새차 구입을 포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사실 가장 비싼 내구소비재라는 자동차 구입대금을 한목에 결제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현대자동차 대치동영업소 관계자는 할부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80%나 되는데 신용불량에 걸려 계약을 해지하거나 아예 할부대출을 신청조차 못해 구입을 미루는 사례가 20%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용카드 사용한도가 확대되고 카드 사용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커 자동차 구매수요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딴판이라는 설명이다. 정부의 특별소비세 인하조치도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양평영업소 관계자는 "특소세 인하는 7월 중순 이후 한 달 정도의 반짝효과만 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지난 9월 무이자 할부판매 등 각종 판촉행사를 접었던 업체들이 다시 갖가지 불황타개 카드를 빼들었다. GM대우 쌍용자동차가 할인 및 할부금리 인하 프로그램을 동원했고 현대차와 르노삼성차도 실질적으로 차값을 깎아주는 판촉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유독 호황을 구가하던 수입차 시장에도 불경기가 찾아왔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이날 발표한 지난 9월 수입차 판매규모는 1천4백60대. 작년 같은 달보다 4.6%가 줄어들었다. 상반기에는 두자릿수의 판매증가율을 보이면서 승승장구했던 수입차업계였다. 수입차협회 관계자는 "수입차는 불경기의 영향을 받는 시차가 국내차보다 늦다"면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판매량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