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상압력이 예전과 다른 것은 외교정책 부진과 실업자 급증으로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선봉에 섰다는 점에서다. 취임 후 3년간 제조업부문의 실업자 수는 한 달도 빼놓지 않고 늘어나 모두 2백70만명에 이르렀다. 제조업 경쟁력 회복 없이는 재선이 어렵다는 '아버지 부시의 교훈'을 부시 대통령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터다. 공세적인 통상 압력이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왔다는 점은 부시 대통령의 막역한 친구이자 1급 선거참모인 도널드 에번스 상무부장관이 제조업 경쟁력 강화정책의 총대를 잡았다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백악관의 핵심 실세 중 한 명으로 통하는 그는 15일 상무부 안에 불공정무역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악관과는 이미 조율이 끝난 상태다. '제조업 지원만을 전담하는 차관보 신설' 발표에 이어 최근 들어서만도 두 번째 가시적인 조치다. 에번스 장관은 이날 제조업 중심지인 디트로이트의 이코노미클럽에서 행한 연설에서 신설 조직은 중국 등 경쟁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개선은 물론 미국 업체들이 제기하는 무역 관련 분쟁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로 중소기업의 수출 촉진을 지원하는 '신설 차관보'와는 또 다른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국 정부의 보조금지급 등과 같은 문제를 사전에 발견해 시정시키는 등 '선제적인 공세'까지도 준비하고 있어 적지않은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에번스 장관은 연설의 상당부분을 중국과 관련된 문제에 할애하는 등 중국이 궁극적인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사무직이건 생산직이건 어떤 국가와도 경쟁할 수 있으나 중국은 공정한 게임을 벌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중국이 지식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이뤄지지 않고,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되지 않은 데다,폐쇄적인 유통구조 등 여전히 높은 무역장벽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중국과의 경제 전면전을 벌이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에번스 장관도 "중국이 미국과 북한과의 핵협상을 풀어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고 세계 경제의 지속성장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바로 이런 논리가 최근 미국이 불공정 무역을 거론하면서 '중국' 대신 '아시아국가들'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수가 높아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불똥이 한국 등 주변국가로 튈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육동인 기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