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배럿 인텔 사장이 최근 방한했을 때 한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설치하느냐는 것만이 우리의 관심은 아니었다. 정보기술(IT) 경기가 언제쯤 회복되느냐는 질문이 어김없이 던져졌다. 전세계 IT경기 예측의 '바로미터'라는 그의 대답은 한마디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회장은 얼마 전 자사의 연례 연구원 정상회의에 참석,"닷컴 붐은 헛된 꿈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IT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메시지일까,아니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뜻일까. 최근 들어 증시에서 이른바 '기술주 랠리'가 거론되기라도 하면 이는 곧바로 IT경기 논쟁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닷컴기업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럴 때면 '신(新)경제'라는 용어를 만들었던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펴는 기회로 삼는다. 물론 인터넷 신경제는 환상일 수 있다고 주장했던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여전히 또 다른 거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 논쟁을 보면 IT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양상은 아닐 것 같다. 경기회복 논쟁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논쟁이 또 있다. IT는 '언제까지 계속될 신성장산업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것이다. 일종의 IT 정체성(identity) 문제라고 해야 할 이 논쟁은 한 컨설턴트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에 게재한 'IT Doesn't Matter(IT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글이 결정적인 발단이 됐다. IT가 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일까. 주장의 골자는 IT가 철도 전기 등과 같은 발전과정을 거치며 다른 인프라 기술처럼 일종의 '일용품'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IT가 발전단계상 시작보다는 끝에 근접했다는 신호도 있다고 했다. IT기업들이 즉각 반박하고 나선 것은 물론이다. 그게 맞다면 IT는 철도나 전기처럼 '유틸리티'로 투자되고 관리돼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 기업들의 공격적인 IT 인프라 투자를 유도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될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IT기업들이 제기한 반박의 골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IT가 성장 생산성,그리고 기업 이익에 미치는 증거들이었다. IT정체성 문제는 현 시점에서 볼 때 시비의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IT중심적 사고' 내지 '기술중심의 낙관론'이 초래할 위험성을 경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 해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IT신화를 이끈 MS가 시도하고 있는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끊임없는 기술 드라이브를 걸었던 MS가 스톡옵션을 폐지하고 고객만족도에 따른 성과급 지급 등 보상체계 개혁안을 발표하며 '성장중심'에서 '안정중심'의 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기술공급 중심(technology push)'에서 '고객중심(demand pull)'으로 나아가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MS가 1975년에 설립됐으니 어느덧 30년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정부와 경쟁기업에서 제기하는 끊이지 않는 독점 시비에 그만 지쳐버린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리눅스와 같은 오픈소스의 위협은 거세지고 MS 자신의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2만달러로 끌어올리는 데 3분의 1의 몫을 담당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IT다. IT 주도의 야심찬 성장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성장은 생각보다 느릴 수도 있다. 전략이 정말 중요하다는 얘기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