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는 외환 위기 발생 직전 한국 경제의 위기 징후를 파악했지만 그릇된 판단과 부실한 분석으로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외환 위기에 대한 사전 감시와 대응 과정에서 많은 오판과 정책 잘못이 있었다는 통렬한 '자아비판'을 내놓아 관심을 끌고 있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IMF 독립평가실(IEO)은 지난달 28일 IMF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브라질의 외환 위기와 관련해 1997년 말에 수행한 정책 결과를 평가한 보고서(IMF and Recent Capital Account Crises: Indonesia, Korea, Brazil)를 IMF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IMF는 50쪽 분량의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이전까지 견실한 성장을 지속했기 때문에 정례 협의 등 일상적 감시 활동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위기 징후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보고서는 "특히 1990년대 자본자유화 조치의 영향에 대한 분석이 미흡했고 외환위기 발생 직전에 파악된 한국 경제의 취약성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고 실토했다. 지금까지 IMF가 단편적으로 우리 나라의 외환 위기에 대해 정책 보고서나 분석자료를 낸 적은 있지만 정책 수행 과정과 결과를 스스로 비판적 관점에서 조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IMF는 그동안 각국의 외환 위기 관리 과정에서 초기 대응 미숙과 정책 선택 오류 및 사후 관리 미흡 등을 저질렀다는 비판에 직면하곤 했으나 번번이 일축하고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보고서는 "한국의 정책 당국이 감독 부문을 포함해 진정한 금융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대외 차입이 많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소홀 등의 문제를 간과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외환 위기 발생 직전인 1997년 10월 정례 협의 당시 IMF가 한국 경제의 취약성과 위기 징후를 감지했으나 ▲환율 정책의 유연성 과대 평가 ▲해외자금조달 경로의 차단 가능성 과소 평가 ▲금융 구조조정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과소 평가 ▲금융시장 지표에 대한 주의 소홀 ▲금융 자유화가 경제의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에 대한 정책 권고 미흡 등 5가지 판단 잘못 때문에 위기 징후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경제 전반을 지나치게 낙관했다고 자책했다. 보고서는 당시 우리 나라의 환율과 관련, "환란 직전 몇 개월간 원화 절하 폭이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 비해 작았던 점에 비추어 원화 가치가 인위적으로 지지되고 있음이 분명한 데도 원화가 과대 평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환 위기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봤다"고 반성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이미 외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한국에 대한 IMF의 정책 권고는 금융 자유화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가속화하는 데 치중했을 뿐 외부 충격에 대비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확보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고금리 정책과 관련, "원화 환율 상승과 이에 따른 물가 압력에 대응해 고금리 정책을 채택했으나 이에 너무 의존했다"고 밝히고 "당시의 선결과제는 외화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었지만 해외 자금 조달 경로가 거의 차단된 상황에서 고금리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구조조정 문제에도 언급, "IMF의 강력한 요구로 한국은 금융.기업 부문에서 광범위한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였지만 IMF는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 너무 집착했다"며 "정책 당국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특정 부문에 대한 단기적 처방이 아닌 경제 전반에 걸친 종합적 정책 프로그램 마련에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 제공 당시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 주요국의 추가 지원 준비금 200억달러 등 모두 550억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으나 추가지원 준비금의 가용성이 보장되지 않음에 따라 한국의 위기 극복 가능성과 IMF의 재원 조달 능력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