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종업원들에게 고정 급여 처럼 확정 연금을 지급하는 미국 기업들의 연금이 부채 급증으로 붕괴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도난 연금을 메워주는 정부의 연금보증공사에 대한 구제금융까지 거론되면서 연금자산 운영 방식에 대한 개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미국 기업 연금이 맞고 있는 이같은 위기는 한국 정부가 주식투자 수요기반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미국식 기업 연금을 도입하려는 데 산 교훈이 되고 있다. 작년 말 현재 미국 기업들의 연금 자산은 1조6천억달러. 퇴직한 후 사망할 때까지 고정 급여를 주는 이 연금의 수혜자는 이미 퇴직한 종업원을 포함해 무려 4천4백만명에 달한다. IT(정보기술) 거품으로 주가가 급등했던 90년대 말에는 자산이 부채를 훨씬 웃돌았지만 3년간의 증시침체를 거치면서 부채 규모가 3천5백억달러로 급증했다. 실제 자산보다 지급해야 할 연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존 스노 재무장관은 "1989년 미국 금융시장을 공황으로 몰아넣은 저축대부조합의 연쇄 도산 같은 위기가 재발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미국 기업연금의 위기는 몇명의 펀드매니저들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최근 3년간 주식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수익이 급감한 것. 금리 마저 떨어져 수익률 하락을 부채질했다. 펀드 매니저들은 수익률 하락을 보완하기 위해 헤지펀드,부동산 투자신탁,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등 여전히 위험이 높은 투자 수단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의회는 주식투자 비중 축소 유도,기업들의 부족 재원 보완 등을 포함한 다각적인 개선 방안을 강구 중이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