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부당내부거래와 분식회계 등혐의로 구속수감된 지 5개월이 가까워지고 있다. 새정부 초부터 한국 경제계를 뒤흔든 'SK사태'는 국내 재벌의 부도덕성과 불투명성을 국내외에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이 사건으로 창사 이후 50년동안 탄탄대로를 달리던 재계 3위의 SK는 그룹 전체가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되는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5개월 동안의 시련이 SK를 투명하고 도덕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게하는 계기가 됐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최근 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 임원들의 태도를 보면 SK㈜라는 기업에 있어불투명성과 부도덕성은 아주 몸에 밴 습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SK㈜는 지난달 15일 SK글로벌에 대한 8천500억원 출자전환 등을 결의한 이사회를 개최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불투명한 자세로 일관,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사회 일시가 이미 닷새 전에 결정됐는데도 이사회가 열리는 당일까지 "이사회개최가 확실치 않으며 유동적"이라고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였다. 이사회가 끝난 뒤 기자들이 항의하자 담당 임원인 법무팀장은 "이사회나 이사진간담회 개최가 무슨 회사기밀도 아닌데, 마냥 감추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는 일정이 있으면 PR팀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같은 약속은 단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SK㈜는채권단의 SK글로벌 법정관리 신청 결의 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15일 이사진 간담회를 개최했는데도 14일 오전까지 이같은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14일 오후 채권단을 통해 확인한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그때서야 마지못해 간담회 개최 사실을 확인해 줬지만 그나마도 "개최 시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끝까지 불투명한 태도로 일관했다. 투명한 일정공개를 약속했던 임원은 "이사회는 내 소관이지만 간담회는 내 소관이 아니다. 부회장 비서에게 물어보라"고 발뺌했다. 이사진 간담회가 열린 15일에도 SK㈜의 불투명성은 이어졌다. 이날 간담회에서이사들은 SK글로벌이 법정관리로 갈 경우 1차 이사회 결의는 일단 무효화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SK㈜는 "이사들이 출자전환 결의 무효화 여부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았으며, 이에 대해 의견을 모은 사실도 없다"고 둘러댔다. SK㈜ 임원들의 `거짓말 행진'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3개월전 최대주주가 된소버린 자산운용 관계자가 처음으로 SK본사를 방문할 당시에도 방문 사실을 은폐하기위해 수차례나 말을 바꾸며 언론을 속이기에 급급했다. 문제는 이같은 태도가 아주 몸에 밴 습성처럼 돼버렸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비밀주의와 불투명성 속에서 분식회계도 싹트고 부당내부거래도 이뤄졌을 것이다. SK㈜는 틈만 나면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 수준의 투명성 제고'를강조하지만 정작 임원들의 행태를 보면 본인들이 대외적으로 내거는 도그마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 같아 씁쓸하다. 오너가 구속되고 구조본이 해체된 지난 5개월 동안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SK의갈길은 아직도 멀다는 느낌이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기자 passion@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