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간 고도 성장을 구가해온 싱가포르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이라크전쟁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등의 충격파로 지난 2분기에 사상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실업률은 갈수록 치솟고 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다국적 기업들도 속속 중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미국 시사주간지 타임(7월7일자)은 '얼어붙은 사자(the lion in winter)'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유례없는 경기후퇴로 싱가포르 경제에 최악의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싱가포르 경제는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침체가 아닌 근본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사상 최악의 경제상태=싱가포르 정부는 10일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1.8%(연율기준)로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마이너스 3.6%)를 훨씬 밑도는 것으로 싱가포르가 성장률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다. 사스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관광객이 급감한 탓이다. 이 기간동안 싱가포르를 찾은 외국인 수는 평소의 3분의 1에 불과하고,제조업 생산은 7.5% 급감했다. 지난 40년간 3%대를 유지하던 실업률은 올해 6%선에 육박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라크전쟁과 사스 문제가 해결되고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하반기에는 경기가 다소 호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타임은 싱가포르의 최근 경기침체가 단순한 경기사이클상의 침체가 아니라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싱가포르 경제모델의 위기=고촉통 싱가포르 총리는 "싱가포르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공룡처럼 멸종할 것"이라고 발언,기존의 경제발전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시인했다. 타임은 이같은 위기의 근본 원인은 싱가포르가 다국적 기업들의 아시아시장 진출 교두보로서의 위상을 상실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 제조업 생산 및 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다국적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산업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가전업체 하니웰은 지난달 싱가포르에 있던 아시아지역본부를 상하이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컴팩 모토로라 내셔널반도체 등은 이미 싱가포르에서 철수했다. 이로 인해 지난 2년간 약 1만2천명 가량이 일자리를 잃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가 앞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아시아 지역금융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하이테크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그러나 타임은 지난 40년간 다국적 기업과 정부의 강력한 지도력에 의존해온 싱가포르경제가 이같은 전환을 이루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