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경제연구소가 보는 하반기 경기전망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각 연구소마다 상반기중 내놓았던 올해 4%대 성장 전망치를 최근 잇달아 3% 안팎으로 낮춰잡고 있다. 소비 투자 생산 등 산업활동 전반에 '빨간 불'이 켜져 당분간 가시적인 경기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5대 연구소 연구위원들은 현재 경기침체는 가계부채로 인한 소비감소가 기업의 생산.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친노(親勞)'성향이 기업 의욕을 꺾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가로막는 잠재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하반기 경기회복은 대외요인보다는 파업 가계부채 실효성 있는 경제정책 등 내부요인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L'자형 경기,미미한 반등 하반기에도 상반기 경기부진을 상쇄할 만큼 민간소비와 기업투자를 부추길 만한 기폭제를 찾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로 인해 가계 지출능력이 떨어져 구조적으로 소비심리가 급속히 살아나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경기가 2·4분기(4∼6월) 바닥을 치고 하반기부터 살아날 가능성은 있지만 피부로 느낄 정도의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L'자형 곡선을 그리며 경기가 횡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용수 LG경제연구원 경기분석팀장은 "하반기 들어 소비와 투자가 소폭 회복되더라도 산업생산이 다시 활기를 띠는 데는 1분기(3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경기 저점이 당초 기대와 달리 2·4분기가 아닌 3·4분기(7∼9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수출둔화·신용불량자 문제 복병 상반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도 하반기에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예상이다. 선진국 경기회복 불확실성 속에 달러 약세,노사불안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 전무는 "달러 약세로 인해 하반기 수출은 월평균 1백50억달러 정도의 현상유지에 그치거나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사회문제로 대두된 신용불량자 문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박재하 금융연구원 거시금융팀장은 "연체액에 상관없이 신용불량자로 등록시키는 현행 제도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3백만명을 넘어섰다"며 "신용불량자와 함께 무분별하게 대출한 금융회사가 책임을 나눠지도록 하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사갈등이 경기회복 걸림돌 소비심리나 투자의욕 위축 만큼이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정부의 친노정책부터 수정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친노정책이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인 투자기업과 해외 투자자들에게 잠재적인 불안요인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도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노동계의 집단행동이 사회 불안은 물론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하 팀장은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정책 중심축을 경제효율보다는 분배 쪽으로 옮겨가고 있어 기업들이 장기 경영전략 수립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확실성 해소가 급선무 이들은 노사문제,금융시장 불안 등 경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한다면 하반기 미국경기 등 대외여건 회복에 따른 '반사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정반석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분석팀장은 "정부가 기업투자에 적극 유도한다는 상징적인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며 "소비 촉진을 위해선 특별소비세 인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하 팀장은 "부실 카드·투신사를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해 국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문건 전무는 "'형평'보다는 '효율'을,'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는 경제정책이 필요하다"며 "법인세 감면이나 투자세액 감면 확대 등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세제 측면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