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포스코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최고 경영자의 부침(浮沈) 속에서도 제철소 현장을 지켜온 이들이야말로 포스코를 몸으로 지켜온 증인들이다. 제철소 설립 초기 안전 보호구가 없이 수건에 물을 적셔서 입에 물고 쇳물을 뽑았고 집진설비가 없어 눈앞이 자욱한 상태에서 근무했지만 보람있는 30년이었다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포항제철소 제선부에 근무하는 김남현 주임(54)은 올해로 근속 30년을 맞이한 사내 최고참이자 1,3,4고로와 제선부를 거친 베테랑이다. 마지막 땀 한방울까지 포스코를 위해 바친다는 일념으로 산다는 그는 30년 동안 15개의 특허를 출원한 '걸어다니는 아이디어 뱅크'. 지금도 현장을 다니다가 자신이 제안해 실용화된 설비가 눈에 띄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는 1973년 7월3일 포항제철 1고로 준공식 당시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황량한 모래밭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밤낮 없이 땀흘리며 일한 피곤함이 한 순간에 싹 가시더라고요"라며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광양제철소 화성부에서 근무하는 황민식 주임(54)도 30년간 용광로 불씨만 쳐다보고 살았다. 1967년 공고를 졸업한 뒤 체신부 공무원으로 지내다가 우연히 세계적인 철강업을 육성한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내가 배운 기술을 활용해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바로 포항제철에 입사지원서를 낸 것이 인연이 됐다. 그는 '영일만의 신화'을 일궈냈던 경험을 살려 광양에서 다시 한 번 '광양만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싶은 욕심에 85년 광양제철소 1기설비 착공과 함께 광양으로 자청해서 건너왔다. 다시 태어나도 포스코맨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요즘 후배들을 위해 30년 동안 조업현장에서 터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포항제철소 제1열연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상구 주임(55)도 지난달 17일자로 근속 30년을 맞이했다. 입사 이후 제1열연공장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는 이 주임은 눈감고도 공장 구석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 이 주임이 맡은 역할도 공장가동의 전반에 대한 기술자문이다. 사실 1열연 공장은 포스코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73년 완공된 1고로에서 쇳물을 받아 각종 철강재를 생산,판매해 번 돈으로 포스코가 본격적인 설비확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철소 건설 초기 삭막한 모래벌판이었던 공장부지에 심은 나무가 30년 동안 아름드리 자라 울창한 숲을 이뤘다"며 "포스코도 숱한 고비를 겪었지만 지금은 모두 성장을 위한 보람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올해 30년 근속상을 받은 포스코 직원은 현장 기능직 사원에서부터 이원표 제철소장까지 모두 99명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