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와 서유럽의 중도 좌파 정권들이 최근 들어 '우향우'로 방향을 급선회하면서 브라질 정부의 행보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그 해답을 제시했다는게 이유다. 그렇다면 왜 룰라인가. 그가 올해 초 대통령에 취임하자 전세계 언론들은 '브라질, 첫 좌파정권 탄생'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룰라 대통령에게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언론은 없다. 오히려 시장주의자 현실주의자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브라질 언론에서도 '좌파' '디폴트(채무 불이행)'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등과 같은 단어가 자취를 감췄다. 이전의 선동적 정치 성향을 과감히 버리고 합리적 대통령으로 대변신하는데 성공한 결과다. 그는 집권 후 노동자 등 소외층을 겨냥, 포퓰리즘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지지층에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노조에 개혁이라는 메스를 가했다. '반노, 친기업'으로 정책을 선회한 것이다. 실업률이 12.4%까지 치솟았으나 연방 예산을 삭감하는 초긴축 정책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며 내세운 '포미제로' 공약은 언제 실현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공장에서 일할 때 잘려 나간 그의 왼쪽 새끼손가락은 이제 브라질 빈곤층의 상징이 아니라 빈곤층의 고통으로 변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인기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브라질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결과에서 그의 지지도는 3개월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룰라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도 64%가 '그렇다'고 답했다. 중남미 정치의 상징인 포퓰리즘을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지금은 현실정치로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수수께끼 같은 현상에 대한 해답을 그의 '실현 가능한 꿈'에서 찾았다. 인기 영합이나 거창한 구호보다는 목표를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룰라 대통령 취임 이후 떠났던 외국 자본이 되돌아오면서 상파울루증시의 보베스파지수는 지난해 10월 8,300선에서 최근 13,000선으로 치솟았다. 수출도 증가세로 반전됐다. 미국 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룰라 대통령이 이달 초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 '특별손님'으로 초청받은 것도 이런 성과의 반영이었다. 그는 지금도 '개혁에는 시간과 고통이 필요하다'며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집권당 내에서조차 고금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으나 "인플레가 12%대로 떨어지면 금리를 내리겠다"며 물가를 최우선으로 잡겠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취임 후 실현 가능한 꿈을 제시한 뒤 흔들리지 않고 이를 실천, 5개월 만에 '룰라 충격'을 '룰라 효과'로 바꿔 놓으며 브라질은 물론 중남미 경제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냈다. 동시에 그의 현실적 리더십은 분배 위주의 친노 정책과 효율적 친시장 정책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부들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규 국제부장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