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단연 히스패닉 인구의 급팽창이다. 스페인어를 일상 생활 언어로 쓰는 이들은 최근 10년간 배 가까이 늘어 3천7백만명을 넘어섰다. 흑인보다 많은 숫자다. 지금은 히스패닉을 염두에 두지 않은 기업인이 없지만 20여년전만 해도 그들을 겨냥한 사업을 생각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워싱턴DC와 버지니아주및 메릴랜드에서 베스트 웨이(Best Way) 라는 히스패닉 전용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최병근 회장(54). 그가 워싱턴 DC에 베스트 웨이 1호점을 낸 것은 25년전인 1978년이었다. 1973년 단 돈 30달러를 쥐고 미국에 이민 온지 5년만에 히스패닉 시장을 뚫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흑인들을 상대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치안이 좋지 않았고 장사도 여의치 않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부터 워싱턴DC 주변에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히스패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흑인들이 노는 반면 대부분의 히스패닉은 열심히 일해 구매력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버는 족족 먹고 마시는데 써버리기 때문에 슈퍼마켓에는 더없는 고객이었죠." 최 회장은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곧바로 히스패닉 전용 마켓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때마침 중소기업청(SBA)에서 8만2천달러를 빌려줘 큰 도움이 됐다. 히스패닉이 좋아하는 토티아,팥죽,호박,치차롱(돼지고기 튀김)등을 대량으로 들여다 팔기 시작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주당 6만~7만달러를 맴돌았던 매출이 넉달만에 15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여세를 몰아 메릴랜드에 2호점을 냈고 버지니아주에 3,4호점을 차례로 열었다. 식품 수입회사인 그린월드 엔터프라이스를 포함해 총 매출은 연 1억달러를 넘는다.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텍사스주 브라운빌스,산안토니오 등 국경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냈죠.노란 껍질을 벗겨낸 옥수수 알갱이로 빈대떡 같이 만든 토티아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때 였습니다." 히스패닉의 습성을 파악하면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히스패닉은 호박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량으로 들여와 팔 생각을 안하더군요. 제가 나섰죠.운임까지 포함해 파운드당 10센트에 사다가 최고 1달러 99센트에 팔기도 했습니다. 짭짤했죠." 문제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조달이었다. 좋은 물건을 들여 오는게 쉽지 않았다. 주로 엘살바도르에서 물건을 가져왔지만 우량 공급처를 확보하는게 힘들었다고 했다. "중남미는 군벌과 이들과 손잡은 정치권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들에게 선을 대 인맥을 쌓아야 했죠." 슈퍼마켓이 커지면서 이제는 안정적인 조달처를 확보했고 엘살바도르 정부에서도 귀하게 대접해준다고 했다. "처음 이민와서는 편의점에서 밤샘 일도 하고 디젤 엔진 수리 기술도 배웠죠.흑인 범죄지역안에서 구멍가게도 해봤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히스패닉의 구매력에 눈을 돌린게 오늘날 베스트 웨이를 일구게 된 거죠." 최 회장은 중소기업청 융자가 베스트 웨이를 여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중소기업융자회사(SFIC)도 인수했다. 히스패닉 이민사회에 기부금도 적지않게 내고 있다.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아들에게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습니다. 저야 맨 손으로 이민 와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했지만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선 첨단 기술과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최 회장은 슈퍼마켓이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고 판단되면 교포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