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붉은 악마' 신드롬을 일으켰던 한ㆍ일 월드컵이 31일로 개막 1주년을 맞는다. '월드컵 첫승'에 목말랐던 한국은 첫경기부터 '이변'과 '파란'의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일궈냈다. 월드컵 신화는 한국의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경제적 상승효과도 클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그러나 그후 꼭 1년이 지난 지금. 장밋빛 환상은 날아가고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기대했던 국가이미지 제고 효과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부 거시경제지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빠졌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 역시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 뒷걸음치는 한국경제 지난해 정부와 일부 연구기관들은 월드컵 대회가 국가경제에 상당한 이득을 안겨줄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관광수입 7천여억원 등 모두 5조3천억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고, 한 민간연구기관은 한국이 '월드컵 16강 진출'만으로도 18조원의 직ㆍ간접적인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상수지는 지난 4월 3억9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5개월 연속 적자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6%대를 기록했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올 1ㆍ4분기에는 3.7%로 반토막이 났다. 개인들의 소비심리와 기업들의 투자의욕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월드컵이 진행됐던 지난해 2ㆍ4분기에 7.9%에 달했던 민간소비증가율은 올 1ㆍ4분기에 1%대 아래로 떨어졌고 설비투자 증가율도 같은 기간 7.5%에서 1.6%로 낮아졌다. 외국인투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6월 이후 올 4월까지 외국인의 직접투자 순유입액(유입-유출)은 월평균 1억3천만달러로 △99년 7억8천만달러 △2000년 7억7천만달러 △2001년 2억9천만달러 등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줄어들었다. 지난 3월과 4월 외국인 입국자수는 각각 전년대비 10%와 29% 감소했다. ◆ 또 다시 분열되는 한국사회 월드컵은 한국 사회에 '자발적인 참여정신'이라는 선물을 남겼다. 남녀노소가 하나된 길거리 응원은 지연과 학연 등으로 갈라져 있던 국민을 통합시키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후 연말 대통령선거 등을 거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이념적 보수와 진보세력 등 세대ㆍ계층간 대립과 갈등이 오히려 확산됐다. 국책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을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화물연대 파업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 등도 이런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분석했다. ◆ 무엇이 문제였나 전문가들은 월드컵 이후 요란스럽게 준비했던 각종 '포스트 월드컵' 전략이 선언적 수준에만 그치고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월드컵 효과를 살려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금은 월드컵을 추억하기보다 오히려 왜 월드컵에서 경제ㆍ사회적 효과를 끌어내지 못했는지를 곱씹어봐야 할 시점"이라며 "월드컵과 같은 대형 이벤트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국가브랜드 전략이 필요한데 후속조치가 매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