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의 위협 발언에 '회담 중단'이라는 초강수로 대응, 당초 일정을 하루반이나 넘겨가며 진통을 겪었던 제5차 남북한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대표단이 지난 24일 새벽 귀국했다. 남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김광림 재정경제부 차관은 북한 대표단이 회의 첫날 기조발언에서 최근 한ㆍ미 정상회담 결과를 거론하며 "남쪽이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을러대자 북측의 공식 해명을 요구하며 후속 회의를 전면 중단, 국내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97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시작된 이후 남북한 협상장에서 한국 고위 관료가 북측의 발언을 문제삼으며 회담의 주도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 차관은 20일 첫 회의에서 '재난' 발언 당사자인 박창련 국가계획위원회 1부위원장(북측 대표)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남측 대표가 회담 도중 일방적으로 퇴장한 것도, 18분 만에 회담이 끝난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김 차관은 회담기간 내내 "협상 내에서만 사물을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며 "한 번쯤 남북협상을 깨고 아무런 성과없이 돌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남측 관계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결국 후속 만남은 44시간 동안의 기싸움 끝에 북측에서 먼저 제의해 이루어졌다. 귀국 예정시간(22일 오전 10시)을 넘긴 때였다. 노(No)라고 말한 남측에 북측이 굴복한 셈이었다. 이후 양측은 당초 일정보다 하루가 긴 5일 동안 밀고당기는 협상 끝에 7개항의 합의문을 도출했다. 남측은 북측에 쌀 40만t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재난' 관련 발언에 대해 북측으로부터 변명 수준의 구두해명을 듣는데 그친 것으로 알려져 아쉬움을 남겼다. 김 차관은 "이번에는 그냥 돌아가고 다음에 회담을 갖는 방안(연기)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논의했지만 북측에서 '회담 결렬'로 받아들이고 대결 국면으로 갈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며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북측이) 구두로 해명한 것도 큰 성과로 봐달라"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고 핵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는 마당에 회담 결렬로 인한 남북관계 단절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 차관이 보여준 첫 기세와 달리 '현실론'과 타협한 모양새가 됨으로써 이번 회담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아니었느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