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 뒤가 고민이다.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국내 간판 대기업그룹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올초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토로한 이 말은 한국 경제 전체에 던지는 '화두(話頭)'로도 주목을 모은 바 있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수출 대표 품목들이 98년 이후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고,최근 극심한 내수 침체속에서도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10년 후에도 이들 산업에만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한국 주력산업의 성장을 줄기차게 견제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도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등 이른바 차세대 전략산업의 핵심기술 선점에 열을 올리며 저만치 앞서 나가는 중이다. 산업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둘러싸여 '질식사'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IT BT 나노기술(NT) 환경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등 미래 전략산업 육성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기존 산업만으론 안된다 70년대 철강, 80년대 자동차 조선, 90년대엔 반도체 컴퓨터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끈 주력산업이었다. 2001년 기준으로 조선산업이 세계시장의 32.4%를 점유해 세계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반도체(5.7%) 세계 3위, 자동차(5.2%) 세계 5위를 기록하는 등 '외형상' 세계적 수준의 산업경쟁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핵심부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연구개발(R&D)투자 소홀, 이공계 대학 진학 기피로 인한 기술인력 부족 등의 문제는 주력산업의 기초 부실을 걱정하게끔 한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에 대한 미국 유럽연합(EU) 중국의 통상압력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기존 산업이 더이상 성장엔진으로 작동할 수 없으리란 암울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 선진국은 이미 신(新)산업 투자에 초점 미국 일본 등은 우리보다 2∼3년 앞선 2000년부터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IT 개발을 위해 부처간 공동으로 2001년 '정보기술 연구개발 사업'에 19억3천만달러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일본도 최첨단 IT 국가 건설을 목표로 2005년까지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BT 분야에서도 미국은 작년에만 연방정부 예산의 무려 25%에 해당하는 2백9억달러를 투입해 국립보건원을 중심으로 인간 유전체 해독, 신약 개발 등 포스트 게놈 연구에 집중했다. 신산업의 핵심 기초기술이라고 평가받는 NT에 대한 투자도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기업이 상용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단계까지 NT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직접 기술지원에 나서고 있다. EU도 에너지ㆍ환경ㆍ유전공학 분야에 적용 가능한 NT 개발을 꾀하고 있다. ◆ 아직 늦지 않았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보다 신산업에 대한 인프라와 기초 연구가 뒤처져 있다. NT는 선진국 대비 25%에 불과한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마나 IT가 선진국 기술수준의 60∼70%를 따라 잡고 있는게 위안거리다. 그러나 신산업에 대한 각국의 투자는 이제 막 시작단계여서 충분히 해볼 만한 게임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초고속통신망 운용(IT), 에이즈 DNA 백신(BT) 등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신산업 분야도 있기 때문이다. 서경학 한국전자부품연구원 본부장은 "정부가 주요 신산업에 대한 산ㆍ학ㆍ연 중심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R&D 예산을 늘리는 등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만들어 실행한다면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