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 떠받치기'와 '부동산 거품 빼기'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침체의 늪에 빠진 경기를 살리기 위해 콜금리를 내린 결과가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급속한 투기붐 확산이라는 부작용을 빚고 있어서다. 정부는 지난 2월 대전 일부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올 들어서만 10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부동산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고삐가 풀린 투기열풍은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과다보유자 5만∼10만명에 대해 보유세를 중과세키로 하는 등의 추가 대책을 이달말 내놓는다는 계획이지만 '약효'가 제대로 통할지 정부 관계자들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분양권 전매를 전면 금지하고 모든 부동산 거래에 대해 양도세를 실거래가격 기준으로 매기는 등의 '정공(正攻)법'이 필요하지만 자칫 '극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이로 인해 부동산값이 폭락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매입한 상당수 투자자들이 '본전'조차 찾지 못해 또다른 신용불량자로 대거 전락할 수 있다는 것. ◆또 다시 칼 빼든 정부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0일 간부회의를 소집,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독려했다. 2001년 하반기 이후 기승을 부렸던 부동산 투기가 올초 경기침체와 정부의 집값안정 의지를 이유로 잠시 주춤했다가 최근 다시 빠르게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 부처가 참가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3단계로 나눠 대책을 마련중이다. 우선은 전국을 돌며 분양권 가격상승을 부추기는 1천여개 '떴다방'을 집중 단속,강력 처벌키로 했다. 떴다방을 배후 조종하는 전주(錢主)들의 자금출처 조사도 병행키로 했다. 연말까지의 과제로 5만∼10만명에 달하는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한 보유세(재산세 종합토지세) 중과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김영용 재경부 세제실장은 "보유재산가액을 기준으로 상위 계층에 대해서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금을 매겨 부동산 보유의 부담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한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그러나 "시중 자금의 흐름을 증권시장 쪽으로 틀지 못하는 한 어떤 투기억제 방안도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노영훈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시장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엽적인 투기단속이나 별도의 시장안정 대책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부동산 임대소득이나 양도소득 등 자본소득에 대한 엄격한 과세원칙만 갖고 있다면 부동산 시장안정은 어렵지 않다는 것. 예컨대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로 부과하는 투기지역을 현재는 지자체(시·군·구)별로 지정하고 있지만 국세청의 과세시스템이 전국을 상대로 한 실거래가 과세를 담보할 수 있어 정부의 정책 의지에 따라 투기억제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노 연구위원은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판단 아래 계속 시장에 위협만 가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안정이 어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부동산을 잡자니 경기부양이 어렵게 되고 부동산을 놔두자니 경기부양의 혜택을 받을 중산·서민층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