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라인이 섰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강성 노조와 경영진이 어렵사리 손을 잡고 겨우 일어서려 했는데…. 느닷없는 운송중단 사태는 모든 정상화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노사 화합, 생산성 향상, 수출 증진… 화물연대의 파업 앞에서는 모두 허사다. 워크아웃 탈피를 위해 안간힘을 써 온 오리온전기는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 것인가. 브라운관을 생산하는 5개 라인 가운데 29인치 TV용 브라운관을 생산하는 라인이 지난 12일 오후부터 가동을 멈췄다. 1백명이 한 조가 돼 모두 3백명이 3교대로 24시간 돌려온 라인은 이미 텅 비어 있다. 평소 브라운관 유리로 가득 찼던 수백개의 '카트'도 모두 방치된 상태다. 29인치 이상의 브라운관을 생산하는 초대형관도 13일 O시부터 절반만 가동되고 있다. 볼록형과 평면형을 절반씩 만들고 있는 이 라인은 중국에서 들여오는 유리원료의 공급이 끊겨 볼록형은 아예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13일 기차편을 통해 컨테이너 6대 분량의 원료가 공급됐지만 고작 15시간 작업분에 불과하다. 그 다음엔 방법이 없다. 부산항엔 4만개 분량의 원료가 도착했지만 발이 묶여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리온전기 노조도 화물연대의 파업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같은 민주노총 소속이어서 화물연대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점을 감안해서라도 하루빨리 협상을 타결지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이 회사 노조 구광덕 부지회장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생산물량의 90%를 부산항을 통해 수출하고 있어 15일까지 파업이 계속되면 수출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월 4백억원에 이르는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올해 목표 달성은 불가능합니다. 회사가 비로소 안정된 노사관계를 발판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는데…."(김영찬 홍보팀장) 극단적인 마찰의 폐해를 경험한 노조는 파업을 끝낸 뒤 거래처를 방문하고 품질개선을 주도하는 등 기업회생에 힘을 모았다. 수개월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근로자들은 올들어 정상 임금을 받고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그러나 지금 맞닥뜨린 것은 화물연대의 파업. 물류대란이 장기화되면 오리온전기는 완전히 침몰할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대로 가면 하루 평균 손실이 25억원. 게다가 그동안 공을 들여 쌓아온 바이어들의 신뢰도 다시 물거품이 될게 분명하다. 좋은 직장을 일구겠다는 근로자들의 소박한 희망도 속절없이 꺾여 나갈 것이 뻔하다. 구미=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