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억제에 총력을 기울여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제는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FRB는 2차대전 이후 줄곧 인플레 억제에 신경을 써왔을 뿐 디플레는 관심밖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공개시장위원회(FOMC)정례회의에서는 `물가가 지나치게 하락할 수도 있다'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졌다. FRB의 메시지에는 `공포의 디플레'가 출현하면 그러잖아도 비틀대는 미 경제가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FRB가 물가상승을 장기간 용인할 것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시적인 물가반등이 경제 `엔진'을 다시 힘차게 돌리는데 기여하리라는 점을 내비치고 있다. 웰스 파고 은행의 손성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디플레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유사'(流砂)와 같아 FRB로서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플레는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추가하락에 대한 기대심리로 소비자들이 지출을 중단하고 이 때문에 기업활동이 둔화되면서 소비촉진을 위해 가격을 내리면 다시 실적이 나빠지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미국이 디플레를 마지막으로 경험했던 것은 1920년말∼1930년대초의 `대공황'때로, 그 이후 FRB는 대부분의 세월을 인플레 퇴치에만 매달려왔다. 앨런 그린스펀 현 FRB 의장과 전임자인 폴 볼커는 `물가안정'이라는 개념에 치중해왔다. 이들이 정착시키고자 한 `물가안정'이라는 개념은 바로 소비자나 기업이 자기들의 행위 결정과정에서 물가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수준을 의미한다. 경제전문가들은 상승률이 2%선이면 이러한 `물가안정' 개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로 산정한 지난 1.4분기중 인플레율은 연율기준 0.9%에 그쳤다. FRB는 지난 6일 FOMC회의후 발표문을 통해 "바람직하지 않은 인플레율 급락 개연성이 인플레 상승 개연성보다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 메시지가 물가에 대한 FRB의 관심이 인플레에서 디플레로 바뀌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세인트루이스 소재 투자회사 `A.G.에드워즈 앤드 선스'의 이코노미스트 패트릭피어런은 디플레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는 걱정이라기 보다는 디플레 발생시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FRB로서는 일본의 디플레 사례를 마음에 두고 있을 거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디플레를 잡지 못해 10여년째 불황속을 헤매고 있다. 일본의 경우 디플레 조짐을 조기포착하지 못해 오늘날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금리인하조치를 통해 신속히 대처하지 못한 점도 원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그린스펀 사단'이 `버블 붕괴'이후 미국 경제에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2년여에 걸쳐 잇따라 금리를 내리면서도 인플레를 지속적으로 억제해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만족할만 경기부양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인플레 억제노력은 효과가 있었으며 전자나 의류 등 몇몇 부문에서는 오히려 효과가 지나쳐 디플레 조짐마저 나타났을 정도였다. FRB는 디플레 확산을 막기 위해 물가를 부추기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될 것 같다. 이는 추가 금리인하와 함께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시중에 돈을 푼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물가가 더 오를 것 같다는 심리도 이런 노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설명이다. 기업이나 소비자들이 물가상승이 임박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소비를 늘리곤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FRB로서는 디플레 현실화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느끼면서도 나중에 `진창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경계의 고삐를 좀처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