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8시 재정경제부 공보실.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 한 명을 제외하곤 모든 직원들이 퇴근해 한산한 모습이다.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12개 조간 신문 가판(街版)을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놓고 '준(準) 비상사태'에 돌입했던 두 달 전과는 판이한 풍경이다. 노무현 정부가 언론 개혁의 첫 작품으로 내놓은 중앙 부처의 '가판 구독금지' 이후 관가에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가판이 배달되는 오후 7시30분을 전후해 기사를 스크린해 신문사에 수정을 요구하거나 해명 자료를 내던 일이 뚝 끊겼다. '언론 대책'에 매달리느라 저녁 9시를 훌쩍 넘겼던 공보실 직원들의 퇴근 시간도 앞당겨졌다. 발빠른 대응을 위해 광화문 가판 집합소에까지 나가 '현장 점검'하던 불편함도 사라졌다. 하지만 속내는 편안치가 않다. '오보(誤報)와의 전쟁'을 선포한 청와대 지침에 맞추려면 주요 신문을 가판부터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 7시께 각 신문사가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인터넷 신문지면(PDF) 서비스'를 들여다보는 일이 새로 생겼다.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컴퓨터 모니터로 기사를 검색하다보니 시간이 더 걸리고 눈도 나빠지고 있다"는 푸념도 들린다. 잘못된 기사가 가판 신문에 나와도 대처하기가 곤란하다. 정부 부처의 한 차관보는 "저녁에 해명자료를 내고 싶어도 청와대 눈치보느라 다음날이 돼야 해명자료를 낸다"며 "다른 신문사 기자들이 확인을 요청해도 적극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가판을 끊은 이후 공보실 직원들의 아침 출근시간도 빨라졌다. 재경부 공보실의 한 직원은 "예전엔 가판을 대충 보고 뼈대를 잡아 다음날 새로운 기사를 추가하면 됐는데 지금은 아침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 6시에는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보고를 위해 아침 9시까지 관련 기사들을 5단계로 분류하는 작업도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각 실.국별로 '시내판 점검반'을 만들어 기사 내용에 따라 긍정, 단순, 건전 비판,악의적 비판, 오보 등 다섯가지로 구분해 청와대에 보고하고 있다. 한 국장은 "직원들이 '긍정적 비판'으로 분류해 놓은 신문 기사조차 내 눈에는 '악의적 비판'으로 보이는 때가 많다"며 "기준이 워낙 모호해 분류 작업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기사 제목만 보고 대충 분류하는 데에도 한 시간 이상 걸린다"며 "이런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