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을 넘어 벤치메이킹을.' 영어 단어를 가지고 장난친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은 실제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경쟁사의 장점을 도입해 새로운 기준으로 삼는다는 벤치마킹이 남용된다고 생각했던지 남의 벤치를 마킹(marking)하려고만 하지 말고,남이 마킹할 만한 벤치를 만들어(making) 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정보통신부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나선 것까지는 좋았는데 IT산업의 발전전략을 해외 유수 컨설팅업체에 용역 준다는 얘기가 들렸을 때는 '그게 아닌데' 싶었다. IT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것과 너무 거리가 멀어 보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벤치마킹이라도 좀 제대로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LG경제연구원이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지식경영'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쏟아져 나온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했던 기업들이 별 재미를 못 봤거나,되레 역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이른바 '패션경영의 함정'이라고 할 이것이 새로운 것만 좇다가 정작 본질을 망각했거나 소홀히 한 결과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새로운 것 찾는 데 둘째 가라면 서운해할 부류 중에 우리나라 공무원을 빼놓기 어렵다. 하고한 날 위에서는 새로운 것만 내놓으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지만,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나라 법 제도 정책수단 중에는 '없는 것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자원부가 요즘 외국인 투자유치 묘안을 짜 내느라 비상이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 3년 연속 감소세인 가운데 올 1분기 실적은 5년 내 최저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북한 핵과 사스 등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데다 국내기업의 투자축소까지 겹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지난 22일 국무회의 외자유치 대책 논의에서 윤진식 산자부 장관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에 투자비용의 10∼20%를 '캐시 그랜트(cash grant,현금 무상지원)'로 주자고 제안했다. 이스라엘 아일랜드 중국 등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중앙정부가 예산을 가지고 직접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인지,또 이런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알 수 없지만,우리에게 없는 새로운 것이라니 귀가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자유치의 기본적 조건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와 같은 노사문제 기업규제가 있는데도 캐시 그랜트로 외자유치에 성공하고 있다는 캐시 그랜트의 '유의미한 통계적 효과'라도 제시하면 모를까 솔직히 말해 지엽적인 것이거나 본질을 벗어난 '편법' 같기만 하다. 우리가 유치하고 싶은 일류 외국기업이 기업환경 기술 인력 등과 같은 '필수적' 고려사항과 세제 금융 보조금 같은 '선택적' 고려사항을 구분할 줄 안다면 그런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최근 인텔의 아시아 반도체공장 유치 여부를 놓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2년 전쯤 이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인텔이 걱정했던 게 노사문제라는 후문은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한다. 그 때 뭐라고 설명했는지 모르지만,노사간 힘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지금의 노동정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글로벌화된 기업일수록 국내기업 외국기업 어느 쪽에 적용되는 규제든 이를 모두 규제라고 인식하는 추세에서 규제정책은 그 때에 비해 또 얼마나 개선됐을까. 노사문제 기업규제에서 불리하면 캐시 그랜트를 얼마나 더 줘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만큼 투명성과 설명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외자유치 대책 논의에서 캐시 그랜트가 궁색하게 보이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