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국내에만 존재하는 대주주 및 산업자본의 의결권 제한 규정을 철폐해 달라고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7일 의결권 제한 등의 약점을 이용한 외국기업의 국내기업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 심각하다며 국내기업을 역차별하는 각종 규제를 재검토해 달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최근 유럽계 자본인 크레스트증권의 SK(주) 주식 매집 사태에서 보듯 국내기업의 역차별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재계, 경영권 확보 초비상 전경련이 국내 기업에 대한 의결권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은 크레스트증권의 SK(주) 주식매집 사건 이후 경영권 방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최근 한화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주)한화의 주식 2백50만주(3.34%)를 54억7천5백만원에 사들여 지분을 12.95%에서 16.29%로 높였다. 최상순 한화 구조조정본부장은 "(주)한화도 외국인이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만큼 경영권 방어가 무엇보다 시급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도 미쓰비시자동차가 갖고 있던 현대차 지분 전량(1.71%)를 1천3백79억원에 사들였다. 역시 경영권 방어 차원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국내기업의 손발을 묶어 놓은 상황이어서 외국기업들은 쉽게 적대적 M&A에 나설 수 있다"며 "적대적 M&A에 방어전략을 짜느라 신규투자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규제로 묶인 국내기업 전경련은 보고서를 통해 공정거래법 상법 증권거래법 은행법 등에 있는 9가지 의결권 규제제도를 제시하고 경영권 방어 제약, 주주평등원칙 위배, 주주권리 제한 등을 문제점으로 들어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전경련은 적대적 M&A나 그린메일(주식을 매집한 뒤 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비싼 값으로 되파는 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출자총액제한 제도상 의결권 제한이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제한키로 한 것도 재계의 발목을 붙잡는 대표적인 규제라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이 제한될 경우 삼성생명(6.9%)과 삼성화재(1.2%)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사실상 무의미해져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구조가 크게 위협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주주는 모두 평등해야" 전경련은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상법(409조) 및 증권거래법(191조의 11) 상장법인은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증권거래법(191조의 16)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할 경우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증권거래법(191조의 18) 등도 모두 국내에만 존재하는 규제로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마땅히 해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환경 노동 세제 등과 관련해서도 국내기업 역차별 조항이 곳곳에 상존하고 있다"며 "한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전한 외국자본과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모든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