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24일 한국 정부가 D램 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예비판정을 내릴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출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게다가 조선, 철강 등 기존 통상현안이 여전한데다 고유가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중국시장마저 흔들리면서 갈수록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 이어 EU까지 = 한국산 D램에 대해 상계관세 조사가 먼저 시작된 곳은 미국이 아니라 EU. 미국이 지난해 11월1일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제소로 같은달 21일 조사에 들어간 반면, EU의 경우 작년 6월10일 인피니온의 제소로 7월25일 조사개시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양측의 조사절차상 차이 때문에 미국이 지난 1일 예비판정에서 한국 정부가 D램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하이닉스반도체에 57.37%, 삼성전자에 0.16%의 관세율을 매겼다고 먼저 발표한 것 뿐이다. 방한 실사가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는 달리 EU는 이미 지난해 12월 2주간에 걸쳐 정밀실사를 마쳤기 때문에 미국측 예비판정에 비해 다양한 정보확인 과정을 거쳐 예비판정이 이뤄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EU는 하이닉스에 대해 33%, 삼성전자의 경우 실제 관세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1% 미만을 각각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삼성전자는 미국에 이어 EU로부터도 잠정적인 `면죄부'를 받는 셈이지만 하이닉스의 고통은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게다가 대만 D램 업계마저 최근 한국산 D램에 대해 제소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한국은 주요 D램 생산국 대부분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보조금 논란 가열될 듯 = 인피니온은 제소를 통해 2000년말부터 2001년에 걸쳐 하이닉스에 대해 이뤄진 채권단의 자금지원 16조원과 삼성전자에 대한 조세혜택 7천600억원 가량이 정부 보조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채무만기연장, 산업은행 회사채 인수, 출자전환 등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지원을 보조금으로 본 것은 마이크론의 제소 및 미국 상무부의 예비판정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EU는 물론 미국과의 쟁점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지원이 사실상 정부 지배 아래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우리 정부는 은행에 대한 정부 지분은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이며 공적자금 투입은행에 대한 경영개입을 막기 위한 총리 훈령까지 마련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권 지원은 오로지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우리측 방어논리다. 이번 보조금 논란은 지난해 EU가 한국 조선업계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것과도 맞물려 있다. 게다가 미 무역대표부(USTR)가 올 초 의회에 제출한 세계 보조금 관련 연례보고서는 우리나라의 D램은 물론 인쇄용지 등에 대해서도 보조금 의혹을 제기한 바 있어 보조금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 다각적 대응책 강구 = 정부는 향후 D램에 이어 제2, 제3의 보조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판단, 다양한 대응책을 준비중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7일 하이닉스의 수출물량을 줄이는 내용의 관세유예협정(SA)을 제안하고 접촉중이지만 협정의 타결 여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전반적인 양국 통상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D램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미국은 물론 EU가 최종판정에서도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권 지원을 보조금으로 규정할 경우 WTO 제소도 불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이번 사안이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에 따른 구조조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WTO 규범 체제와 IMF 체제 사이의 충돌 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