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구속, 크레스트증권이 SK(주) 최대 주주로 부상,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M&A(인수.합병) 논란.' 최근 주요 경제현안으로 부상한 'SK 사태'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참여연대'다. SK사태의 시발점인 검찰의 최태원 SK회장 구속은 참여연대의 고발로 비롯됐다. 크레스트증권측은 SK(주)의 지분 14.99%를 매집해 최대주주로 부상하기 직전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고려대 교수)을 만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들 일련의 '사건'은 최근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결성으로 본격화된 한국의 시민운동은 14년이 지난 지금 권력의 일부를 담당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지적이다. ◆ 이슈 선점, 영향력 확대 지난 8일 오전 국세청 기자실. 기자들은 새 정부의 세정혁신방안을 브리핑하기로 한 이용섭 국세청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11시30분께 기자실 문을 열고 먼저 들어온 사람은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세정혁신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다. 박 위원장은 이 청장과 나란히 서서 얘기를 시작했다. "이 청장께서 참여연대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국세행정의 아젠다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날 국세청이 발표한 세정혁신방안의 뼈대는 참여연대가 제기했던 대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94년 설립된 참여연대가 본격적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지난 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장이었다. 참여연대 소속 장하성 교수는 삼성전자 경영진과 계열사 부당지원 여부 등을 놓고 마라톤 논쟁을 벌여 '13시간 주총'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후 장 교수를 중심으로 한 소액주주 운동 및 재벌개혁 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지난해 입법 예고한 증권집단소송제, 입법을 추진 중인 상속.증여세 포괄과세 등은 모두 참여연대가 강력히 제기한 경제개혁 현안이었다. 경실련도 경제투명성 확보를 위한 이슈로 '금융실명제'를 부각시키며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지난 93년 금융실명제를 탄생시킨 산파역을 담당했다. ◆ 정권의 한 축을 담당 노무현 정부의 인재풀에서도 시민단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비롯 정찬용 인사보좌관(광주YMCA 사무총장)과 수석급 등 상당수가 시민단체 출신이다. 김병준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위원장은 경실련 멤버로 활동했다. 행정부 내에서는 재벌개혁의 칼날을 쥐고 있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경실련 창립멤버이며 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도 경실련 출신이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정치개혁시민연대 준비위원장을 지냈다. 입각은 못했지만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인수위 경제분과 활동을 주도했던 김대환 인하대 교수는 94년부터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냈다. 국정원장 내정자인 고영구 변호사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민변' 출신이다. 시민운동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논란 속에서도 시민단체의 국정에 대한 영향력은 이들을 통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