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전을 사실상 승리로 이끌면서 국제 경제무대에서도 통상 일방주의를 한층 강화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미국이 세계 무역질서를 새로 짜기 위해 통상 전반에 대한 공세를 높여갈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라크전 수행 과정에서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과의 공조체제 구축에 실패한 만큼 지금보다 다소 유연한 자세를 보이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통상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 행정부와 공화당이 군수산업 등 주요 지지세력과 이해집단에 지고 있는 '선거 빚'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는 탓이다. 김병주 CJK스트래티지 부사장은 "이라크전에서 보듯 미국은 특정 국가에 대한 이익 실현을 위해선 국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공을 펼치는 추세"라며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주요 경제축과 미국 간의 통상 마찰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박봉규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미국의 경쟁력이 취약하거나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빠진 산업이 통상 공세의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며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주력산업이 분쟁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일명 뉴라운드)' 협상 등 다자 통상 분야에서도 미국의 입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투자실장은 "미국이 이라크전 이후 강화된 국제사회의 발언권을 활용해 야심적인 시장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지지부진한 농업 공산품 서비스 등 DDA 주요 협상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